해충도 쓸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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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충도 쓸모가 있다
  • 김영택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10.2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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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 중앙신문=김영택 | 가을철에 들어서니 한동안 뜸했던 청첩장이 수두룩 쌓이고 달력에 기록한 날짜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다. 토요일 11시로 잡힌 친구 딸의 예식에 참석차 자주 안 하던 정장을 하고 길을 나섰다.

이천에서 수원까지 가는 길은 한 시간 정도지만 가는 길에 잠시 다른 곳 좀 들렸다가 갈 생각으로 출발을 서둘렀다 승용차가 시내를 벗어나자 넓은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름철 같으면 오전 9시는 해가 중천에 떠오른 날씨나 가을 햇빛은 안개 숲에서 늦잠을 자다 깨어났는지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공허한 모습을 보여준다.

차를 달려 얼마쯤 지나자 안개가 걷히고 날씨가 쾌청해지면서 푸른 하늘과 황금빛 들녘이 베일을 벗고 눈부신 모습으로 눈앞에 들어온다. 농부들이 한결같은 마음이 심긴 들녘은 고맙게도 작년에이어 올해도 풍년의 결실을 가져왔다.

차 창가에 비친 10월의 풍경을 보니 황금빛 물결이 기쁨을 가득 채워준다. 그림과도 같은 가을 풍경 속을 신나게 달려 나가자 농자 천하지 대본이란 글귀가 머릿속에서 저절로 떠오른다. 우리가 먹는 식량 과채소가 농민들이 흘린 땀과 노력으로 생산량이 좌우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자 어려움 속에서도 농촌을 지키며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더없이 고마워진다.

풍년의 기쁨에 젖어들자 나도 모르게 차창밖의 풍경을 카메라처럼 눈에 담아보고 싶고 가슴속에 채우고 싶은 욕망이 불끈 솟구친다. 도로를 달리면서 스치는 길옆의 논들을 유심히 바라다보자 아침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탓인지 몰라도 이상스럽게도 보는 논마다 족족 작은 거미줄이 쳐져있는 것이 눈에 띈다. 논에 거미줄이 있다는 것은 농약을 쓰지 않았다는 산 증거다.

쌀 생산량이 부족한 시대만 해도 논에는 농약 뿌린 냄새가 진동했고 강력한 농약 성분으로 인해 해충과 벌레들이 싹쓸이 되다시피 죽었다.

그 결과 벼의 생육에 이롭다는 우렁도 죽었고 나방을 잡는 거미도 죽었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논바닥을 날아다니던 메뚜기까지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농약을 사용해 부족했던 쌀이 증산되어 주식이 해결되자 반대로 인명피해가 늘어났다.

원인모를 병들이 사람들을 괴롭혔고 생명을 앗아갔다 계속된 농약의 피해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무공해 청정식품만을 찾게 만들었고 생산자인 농민들도 농약사용을 최대한 억제하며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농업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농약 대신 오리를 방사해 제초작업과 해충박멸을 병행해나갔고 우렁이를 사육해서 미생물을 만들어 토양을 되살렸다. 그 결과 농약으로 인해 제구실을 못했던 논들이 퇴비를 넣어준 것 같은 효과를 나타냈고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무공해 쌀들이 지역마다 생산되어 소비자의 구미를 당긴다.

전혀 쓸모 가치가 없어 보이는 식물과 해충도 때로는 자연을 정화하고 사람을 살리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썩어가는 곰팡이균에서 페니실린을 만들어 수많은 목숨을 구했듯이 독성이 강한 식물과 해충에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 프로젝트 속에서는 성공을 거둔 분야도 적지 않다.

독이 독을 해독하는 요법은 이미 오래전부터 은밀하게 전해져 내려 온 민간요법이었다. 생명공학이 발전하다 보니 사람에게 위해가 되는 것으로 만 생각했던 독초와 파충류에서 사람 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 연구가 활발하다.

일례로 독사에게 물리면 뱀독으로 만들어진 해독제를 맞고 전갈과 복어의 맹독을 인체에 유용하게 쓰이는 실험이 학자들에 의해 연구 중이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만 인간을 괴롭히는 암과 에이즈 등 악성병들의 항체 바이러스를 뜻밖의 식물과 해충에서 발견할지도 모른다. 조물주는 이 세상을 하나도 버릴 것이 없도록 창조하셨다. 비록 독이 있고 해가 되는 동식물이라 할지라도 다만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독이 되고 약이 되는가를 연구과제로 남기셨다.

현대의학의 발달은 놀랍게도 잡초로만 생각하던 식물들이 약으로 쓰여지고 징그러운 해충도 사람의 건강을 위해 약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고정관념을 버리면 모든 것이 이롭고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논에 비료와 농약을 주지 않더라도 우렁을 기르고 오리를 사육하면 해충이 사라질뿐더러 미생물이 자라나서 토양을 살찌게 한다 또 농약 피해가 없어 논마다 진을 친 거미들이 멸구와 나방을 잡아들여 일석이조의 영농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런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벼들이 황금 들녘을 이루고 풍년마당을 만들었다 땅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가꿔온 농부들이 이루어낸 결실인 것이다.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다본 들녘은 온통 황금색으로 채색되어 가슴속에 뜨거운 감정을 솟구치게 하고 나도 모르게 갓길에 차를 세우게 한다. 차에서 내리자 황홀한 가을 풍경에 감격과 흥분이 포만감으로 부풀려진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달콤한 꿈에 젖자 햇빛이 온기를 뿜으며 기분 좋게 안겨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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