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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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양반
  • 유지순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10.16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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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유지순 | ‘사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 사람이 가끔 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잠재해 있던 자랑스러운 마음이 머리를 들면서 “여주요.”하는 대답이 나온다. ‘여주’라는 단어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면서 깔끔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듯하다.

양반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 국어사전이나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양반의 뜻 이전에 ‘그 사람 양반이다’라고 하면 점잖고 의리가 있으며 고상한 성품을 가지고, 남의 사정을 잘 배려해 주며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과묵한 도덕적인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이웃과 잘 지내고, 조용하게 말썽 없이 살고 있는 동네를 흔히 ‘양반동네’라고 한다. ‘여주’ 하면 양반고장으로 연상이 되는 것은 문헌에 나타나듯 큰 벼슬을 한 이름 있는 양반들이 많이 낙향을 해서 살았기 때문이다.

2005년 말에 여주군사편찬위원회에서 펴낸 일곱 권으로 된 ‘여주군사’를 보았다. 1권 자연과 역사, 2권 성씨와 인물, 3권 문화유산, 4권 민족과 전승, 5권 현대의 정치경제, 6권 현대의 사화문화, 7권 자료집이다. 여주의 모든 것을 집대성해 놓은 이 책을 보면 대단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여주에 살고 있는 것에 절로 자부심이 인다.

여주와 인연을 맺은 지 30여 년이 넘었고, 아주 몸담고 산지가 10년이 넘었다. 오랜 여정을 걸어오는 동안 여러 고장을 다니며 살아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접해 보았기 때문에 얼굴만 보아도 그 사람됨을 판단할 수 있다. 

여주사람들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대해도 부드럽고 여유가 느껴진다. 긴 역사 속에서 쌓여진 성품도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만,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넓은 들이 있어 생긴 기질인 것 같다. 서울과 수도권에 물을 공급하는 강변에 자리하고 있어 오염물질을 내는 공장이 없는 것도 사람들이 유해진 원인일 것이다.

여주가 경제적 발전을 저해하는 여러 가지 여건을 가지고 있어 살기가 힘들다고 종종 불평하는 것을 듣는다. 그런 요인들이 오히려 여주양반상을 만드는데 일조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외부에 나갔다가 여주에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주에 와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하는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많다. 여주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만으로도 여주라는 고장이 친숙하게 마음속에 다가 오기 때문이다.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눈만 돌리면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곳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는 도시로도 여주가 으뜸이다.

영월루에 올라가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여기까지 흘러온 내 인생길을 음미한다. 신륵사에서는 고승들의 숨결이 금방 옆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강월헌에 앉아 바라보는 강물은 속세에서 묻은 마음 속 깊이 낀 때까지 말끔히 씻어 내린다. 

목아 박물관에서는 불상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진리들을 깨닫게 해 주고, 그 조각솜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넓은 절터의 고달사지와 그곳에 남아있는 문화재들은 먼 과거로 나를 이끌어 가며 그 옛날 번성했을 시절과 그 절이 사라지게 된 연유가 궁금하다.

 세종대왕 능과 효종대왕 능은 어떤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왕의 능이 여주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런 문화의 향기들이 몸에 밴 여주사람들은 저절로 양반기질이 몸에 배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주도자기도 여주양반상에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이 밖에서도 여주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역사의 흔적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여주에서 태어나 여주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도 가보지 못한 유적이 많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관광지로 제대로 개발을 한다면 무한한 발전의 가능성이 있는 곳이 여주라는 생각이다.

양반은 어려운 사람을 위해 가진 것을 나눌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알며, 양보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알아야 한다고 정의를 했다. 여기에 더 해서 친절하고, 사리에 밝으며, 실리에도 밝아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그런 여주양반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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