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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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과 저승 사이
  • 유지순
  • 승인 2019.10.0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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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오랜만에 고향 선산을 찾았다. 명절과 시제 때마다 다녀오려고 계획을 세워도 이런 저런 핑계로 찾아뵙지 못했는데 이번 한식에는 열일 제쳐 놓고 고향으로 향했다.

천리 길을 따라 양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산이 남쪽으로 갈수록 연초록색으로 선명해져 그 고운 빛깔에 넋을 잃는다. 산의 위치 좋고 양지바른 곳에 어김없이 각양각색으로 단장한 많은 무덤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편안히 자리 잡고 있다. 산에 무덤이 없다면 얼마나 더 보기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내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요즘 매스컴에서는 장묘문화에 대한 기사로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돌아가신 분을 언제든 가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곳에 모시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한 해에 여의도의 1.3배나 되는 땅이 묘지화된다니 더 이상 매장을 고집한다면 자연훼손은 물론 좁은 땅덩어리에 산 사람이 설 땅이 없어질 것이다. 

그래도 봉분을 만들면 70년 정도 지나 자연히 무덤이 소멸 되지만, 석물로 설치할 경우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으니 사후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진시황릉, 권좌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영혼불멸을 꿈꾸고, 많은 부장품과 함께 무덤을 튼튼히 만들었지만 도굴 당하고 파손되고,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자료로만 쓰이니 무덤이 무슨 소용인가.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50% 이상이 화장을 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50년이 넘었다. 선산이 아파트단지로 변해 이장문제로 집안에서 의견이 분분했지만 다수결로 화장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처음 묘로 쓸 때 지관이 정해준대로 제일 좋은 위치에 자리 잡았지만, 무덤 속으로 스며든 물 때문에 유골이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습한 곳에서 부모님을 건져드렸다는 생각에 안도도 되고, 편안한 곳으로 보내드리는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시댁의 선산도 깊은 산골이라 안심하고 무덤을 쓸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런데 고속도로가 동네 가운데를 지나고 있어 우회도로 계획이 우리 산을 관통하게 되어 몇 분의 무덤을 옮겨야 된다고 한다. 살아서 이사 다니는 것도 힘든데 죽어서도 옮겨 다녀야 되는 조상들을 생각하면 죄스럽기도 하고 답답하다.

 다른 데로 옮겨 간들 그곳은 안전하게 오래 묻혀 있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한 번 치르기도 어려운 장례를 또 겪어야 되어 자손으로서도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이장은 초장보다 묏자리 정하기가 더 까다롭다니 걱정이다.

선산 부모님 묘소 앞에 일찍이 지관이 정해준 우리 부부의 자리가 있다. 아직 죽는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데, 벌써 죽어서 들어갈 집을 마련해 놓고 있으니 그 묏자리 앞에 서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다가 언제 갈 것인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나마저 자연을 훼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시신을 토막을 쳐서 새에게 던져주는 티벳의 조장, 사람들이 마시고 목욕하며 빨래도 하는 강가에서 화장을 하고 타다만 시체를 강에 던지는 인도의 장례, 산이 없는 호치민시 근처에서 논 가운데 단을 높이 만들어 묘를 만드는 것, 발리에서는 죽은 가족을 화장하여 집 뜰에 묻고 탑을 쌓아 무덤을 대신 한 것을 보았다.

 미국에서는 곳곳에 공원보다 더 예쁜 공동묘지를 동네 가운데 만들어 놓았다. 그 공동묘지 내에서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환경과 문화에 따라 나라마다 각기 다른 장묘문화가 정착을 했지만 어떤 방법이 가장 현명한 것일까 생각해 본다.

요즘 대두되고 있는 수목장(樹木葬)은 화장한 뼛가루를 나무 밑에 묻고, 나무에 표시를 해 놓는 장묘방식이다. 그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며 나무에 조상의 영혼이나 육신이 곁들어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 좋은 장묘문화로 자리매김 할 것 같다. 나무의 수명이 인간보다 길다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사후에 장기나 시신을 기증하는 사람도 마지막에는 화장하여 수목장을 한다면 그 가치와 빛을 더 발하리라는 생각이다.

‘허가 없이 매장 및 이장을 할 수 없으며, 마을에서 떨어진 산림에도 매장허가를 얻어야 되고, 농경지 전답은 일체 묘지를 설치할 수 없고, 어길 경우 법적조치를 하겠다’는 시설묘지 설치법이 있지만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죽은 사람 때문에 산 사람이 피해를 입는 상황이다. 장묘방법의 선택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본인이 알아서 해야겠지만 긴 안목으로 볼 때 과연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는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다. 이승에서의 삶을 잘 마무리 하고, 저승으로 갈 때 후손에게 폐 끼치지 않도록 깔끔하게 매듭짓고 싶다.

이승에서 지내던 육신을 이승과 저승 사이에 무덤으로 남겨 두고 영혼만 저승으로 가는 것보다 영혼과 육체가 함께 저승으로 간다면 저승에서도 지내기가 훨씬 편하고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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