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여행 - 순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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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여행 - 순천만
  • 송년섭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10.0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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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송년섭 | 새벽안개가 앞을 가로 막는 고속도로를 조심스럽게 달려간다. 어둠이 걷히며 들판의 곡식들도 기지개를 켜며 새벽잠에서 깨어난다. 몇 가지의 고속도로를 지나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구경을 가는 동네 노인회 가을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 해 봄가을 두 번 씩 마을 노인회에서 다녀오는 소풍은 행선지 결정이 제일 중요하다. 이번 박람회는 우리들 생전에 다시 볼 수 없는 행사여서 꼭 보고 싶고 내용이 궁금하여 가고 싶은데, 너무 장거리이고 넓은 행사장을 노인들이 돌아다니며 관람하는 게 무리이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어려움을 고백하는 회장단을 설득하여 순천으로 어렵게 결정 되었다.

햇볕이 차창의 물기를 말려주니 창밖의 경치가 우리를 반긴다. 들을 가르고 산을 돌고 터널을 지나 순천에 도착한 것은 이른 점심시간. 예약한 해물탕집에 다다르니 푸짐한 식사가 기다린다. 전라도 사람들은 인심이 후하고 친절하다. 게다가 음식이 정갈스럽고 맛있다. 버스에서 떡이며 과일, 술로 배를 채웠음에도 해물 탕 냄비가 텅텅 비워진다.

지난 4월부터 문을 연 박람회는 폐막을 앞두고(10.20) 높푸른 하늘, 서늘한 가을바람에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 틈으로 젊은이들이 날쌔게 지나가고 어린이를 가운데 둔 젊은 부부는 아이를 즐겁게 하려고 애를 쓴다.

순천시 풍덕동, 오천동 일원 34만평 너른 들에 23개국이 83개 정원을 꾸미고 440만 명 구경꾼들에게 자기 나라의 멋과 문화를 자랑하고 있다. 동천물줄기 양편에 아기자기한 정원을 만들어 놓고 자연과 소통하는 명소, 힐링과 체험, 동심이 있는 명소, 추억을 만드는 명소, 아름다운 정원이야기를 꾸몄다. 세계에서 모인 정원은 헝크러진 마음을 바로 잡아주고 허전한 마음을 채우고 달래준다.

환경을 보전하면서 문화를 유지발전 시키며 삶의 가치를 높이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이곳에 금자탑을 세워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 하고 있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우리 관광단이 짧은 시간에 넓은 구경거리를 만끽한다는 건 불가능 한 일. 마침 20 여명이 탈 수 있는 전기자동차가 운행하고 있어 1 인당 2000원씩 차비를 내고 2.4km 길을 안내방송을 들으며 한 바퀴 돌고 겉만 훑어보았다.

걷는 것 보다는 편하고 시간이 절약되어 좋긴 하지만 주마간산 격이어서 아쉽기도하다. 영국, 터키, 스페인 등 서양 나라, 중국, 일본, 태국, 인도 등 아주 권 나라들이 그림 같은 공간을 세워 오는 이들을 반긴다. 영화에서 보던 각 나라의 정원의 풍경,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알록달록한 꽃 길, 나무들이 또 우리를 반긴다.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찰스 젱스가 공들여 가꾼 순천만 호수 정원이며 자연을 살린 각국의 정원사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돌아보며 음미해보니 생명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자연과 사람이 상생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전달되고 꽃 피는 소리, 나무가 크는 소리, 순천만 갈대숲이 춤추는 소리, 그 속을 헤엄치는 갯지렁이들의 호흡이 들린다. 갑자기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는 거부감이 없는 건 만든 이들의 장인 정신이 출중해서일 거다. 정원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만날 수 있으니 가까운 곳에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보는 셈이다. 옛 멋 그윽한 한국의 담백하고 우아한 정원, 옛 선비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릴 듯 하고 연못에서는 작은 물고기가 마음 것 헤엄치는 것 같다. 야수의 장미정원, 나선형 언덕, 열대 수림, 아직까지 보지 못하던 기이한 조형물을 보며 사람의 정성이 뭉치면 크나 큰 예술품이 탄생한다는 진리를 터득한다. 모두 세상에서 내로라하는 기술자들이 만든 것이니... 유리온실에 만들어진 열대 정원에는 생애 처음 보는 식물이며 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정원박람회에 자연만 있는 게 아니다. 최첨단 기술로 식물을 키우는 과정이 눈길을 끈다.

이동식 식물 재배 공간과 최첨단 경작과정은 농부들에게도 흥미를 더해준다. 우리 생전에 저런 방법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바쁠 것 없는 발걸음을 어느 실내로 옮기니 실내를 가득 메운 각 나라들의 민속 공예품, 생활용품들이 알은체를 하며 손을 흔든다. 작품 구경하랴 설명 들으랴 밀물처럼 몰려드는 인파 때문에 쫓기듯 나오니 화사한 가을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시간, 경로의 어려움으로 제대로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이런 먼 곳까지 구경을 나선다는 건 힘든 일이다. 적은 비용을 내고 편안한 교통편에 갖가지 음식과 간식을 제공받으니 좋고, 오가며 보는 관광꺼리가 추억을 만들고 동네 여러분과의 친교를 맺게 해주니 참으로 유익한 일이다.

버스 안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노래로 흥을 돋우다 보니 어느 새 저녁식사가 예약되어 있는 여주시내다. 여행. 어느 때 누구와 어디를 가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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