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혼상제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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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혼상제의 덫
  • 송년섭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09.2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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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송년섭 |  달 스무 사흗날, 증조할머니 제사를 모시면 우리 집 제사 일정은 끝난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어머니는 설 준비를 위해 엿을 고고 떡을 만들고 두부, 약과, 다식을 만들고 만두를 빚느라고 섣달 그믐날까지 정말 고생을 하셨다. 당연히 하는 일, 누구나 하는 일, 제사를 앞둔 주부들은 쉴 틈도 없이 고된 일과를 보냈다.

4대 봉사(奉祀)를 하던 시절에 우리 집은 1 년에 설, 추석까지 열 한번 제사를 모셨다. 거기에 시제까지 모셔야 했으니 제사로 시작해 제사로 끝나는 일상이었다.

옛날, 우리의 조상들, 웬만한 가정이나 개인들은 교통, 통신, 운반수단이 불편한데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관혼상제의 덫에 걸려 헤어나지를 못하였을 것 같다. 지금 시대에 보면 관혼상제의 관(冠)은 없어진지 오래여서 알지도 못하니 논외로 치더라도 혼(婚), 상(喪), 제(祭)에 묻혀 일생을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는 기분이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 관혼상제 문화도 알아보지 못하게 변화하였다. 가마타고 조랑말타고 연지 곤지 찍고 입장하던 전통 혼례는 사라진지 오래고. 상(喪)도 옛날 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예식장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니 큰 어려움이 없고, 당사자나 가족의 노고가 절감되니 다행이랄까. 누구나 한번 결혼하고 몇 차례 상(喪)을 치르면 되지만 제사는 그럴 수가 없다.

기제사(忌祭祀)는 기일에 모시는 제사다. 나는 3대 봉사를 하는데 효(孝)를 전제로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니 만큼 제사의 정신과 뜻을 새기고 모신다.

아버지는 생전에 기제사를 3대 봉사로 줄여 주셨고, 조상 모시는 법도를 제대로 일깨워 주셨다. 제수를 마련하기 위해 상점에 들르면 물건 중에서 제일 좋고 비싼 것을 고르시고 절대로 가격을 깎지 않으셨다. 어려서부터 밤 까는 것과 축문은 가끔 내게 쓰게 하셨는데 정성을 제일로 치셨다. 지금도 축문을 쓸 때면 아버지의 근엄한 표정이 생생하다.

아버지는 세월의 흐름을 일찍 깨닫고 집안 몇 몇 어른들과 의논하여 시제(時享)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셨다. 아버지가 종손도 아니면서 앞장서시는 게 겁이 났지만 나도 자료를 작성하여 일가들에게 취지문을 보내는 등 뒷바라지를 하였다. 당시에 우리 집안은 음력 10월 15일부터 나흘간 30여 분의 조상 산소에서 시제를 모셨었다. 종중 토지를 경작하는 분들이 시제를 모시면 나머지는 수확량에 관계없이 경작인 모두 갖는 제도였다.

새로운 혁신안에 따르면 경작 마지기 수에 대략 백미 한 가마를 내야해서 경작자들의 극심한 반대도 있었다. 그 도지를 종중에서 취합하여 10월 보름 가장 가까운 일요일에 재실에서 일가들이 모두모여 위패와 제상을 진설하고 초헌 아헌 종헌 등 절차는 홀기에 따라 제대로 시행하되 축문도 한번만 읽고, 산신제도 한번만 지낸다.

한 날 한 시에 그 많은 제사를 한 번에 모시니 경비, 시간, 노력의 절약은 비교가 안 된다. 그러하니 반대의견도 혁신의 물결을 넘을 수는 없었다. 음식과 제사는 시골에 사는 일가들이 혼연하여 준비하니 이제는 기계같이 움직인다. 벌써 40년이 다 되어간다. 1년에 들어오는 도지가 백미 70여 가마여서 각종 지출이 빠듯하지만 아껴 쓰고 있다. 지금도 옛날식으로 산소에서 시제를 지내는 대전지역 종중제사에 참여해보면 우리의 선택이 탁월하였음을 알겠다.

평일에 제사를 모시게 되니 젊은이들은 구경도 할 수 없고, 제수 운반용 4인교 메는 인부를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인건비가 따로 들어가니 어려움이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기제사도 내 외가(파평윤씨), 내 처가(평택임씨) 우리 문중(은진송가)을 보면 모시는 절차가 각기 다르다.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시대 당파의 영향일까. 요즘 제사야 모든 걸 상점에서 사다가 쓰니 주부들이 할 일도 별로 없다지만 시간, 물자등 허례(虛禮)와 번폐(煩弊)에 주부들이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사회생활과 생업에 바쁘다보니 기제사를 한 번에 묶어 날을 정하여 우리 문중 시제 모시듯 하는 분들을 보게 된다. 

제사는 조상과 후손의 연결고리이고, 효(孝)의 발현이며, 조상에 대한 작은 보답이지만 지금까지 제도가 변해왔듯이 한 번 더 변화시킨들 큰 잘못일까. 

옛 성현(聖賢)도 시류에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였으니 풍속이나 제도가 바뀐들 큰 흉이 안 될 것이다. 매우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히 여기시던 아버지도 시제제도를 바꾸셨는데, 기제사 지내는 것도 바꾼다고 크게 꾸짖지는 않으실 것 같아 나도 기제사를 한 번에 모시는 방안을 생각중이다.

내 증조할머니 기일은 섣달 스무 사흗날로 설 일주일 앞이고 할머니는 추석 일주일 앞이고 어머니 기일은 추석 닷새 뒤다. 추석, 설 명절에 와야 하는 외지의 아이들이 일주일 간격으로 시골에 오는 게 어려워 불효를 무릅쓰고 방법을 생각중이다. 

내 아들 세대까지는 제사를 모시겠지만 이제 열 살인 손자가 제사를 모시게 될지, 세태가 어떻게 변할지, 산소 벌초는 제대로 할지 의심이 간다. 

가끔 제사 이야기를 하다보면 많은 분들이 우리 다음 세대에는 제사도 안 지낼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럴 바에야 제사도 확 개편하여 자손들의 수고를 덜어 줄 방안을 제시하고 꼭 지키도록 다짐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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