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천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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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천적들
  • 유지순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09.1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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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유지순 | 말벌로 담근 술이 몸에 좋다고 하여 말벌이 눈에 띌 때마다 잡아서 술에 넣는다. 살아서 날아다닐 때는 사람을 위협하는 그 가공할 독이 무서워 말벌을 만날까 전전긍긍 한다. 

말벌이 죽어서 술에 담겨 있는 모습은 징그럽기만 하다. 그렇게 담근 술이 몇 해 동안에 몇 병이나 모아졌다. 손가락 크기만 한 말벌은 쏘이면 목숨까지도 앗아갈 만큼 무섭다.

많은 말벌이 꿀벌에 붙어살기 위해 양봉장 근처에 집을 짓고 사니 양봉농가는 말벌이 나올 철이면 벌통 지키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말벌은 꿀벌을 모두 죽이고, 모아 놓은 꿀을 훔쳐가고, 죽인 꿀벌을 끌고 가서 새끼 먹이로 준다. 말벌의 피해로 벌통 앞에 철저하게 죽어 수북이 쌓여 있는 벌의 주검을 보며 심한 상실감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꿀벌의 천적에는 거미, 잠자리, 두꺼비, 개구리, 새, 말벌, 중벌, 생쥐와 같은 여러 종류의 생물들이 있다. 꿀벌의 천적들이 눈에 뛸 때마다 잡아 주지만 당할 수가 없다. 

그래도 이런 것들을 꿀벌을 한 마리씩 물고 가니 피해는 말벌만큼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 천적 중에 제일 무서운 것이 말벌이다. 꿀벌은 사람이 지켜주지 않으면 순식간에 멸종할 것이다.

말벌이 가장 많이 오는 시기인 9월에 남편이 출장을 가서 열흘간 양봉장을 비운 사이 많은 양의 벌이 죽임을 당해 이만 저만한 손실이 생긴 것이 아니다. 말벌이 많이 오는 날은 40여 마리를 잡기도 한다. 꿀벌을 늘리려고 여름내 들인 공이 허사로 돌아갔다.

말벌을 잡으려고 여러 가지 유인책을 쓰지만 늘 역부족이다. 끈끈이에 말벌을 한 마리 잡아 붙여 놓으면 친구가 거기에 앉아 있으니 친구라도 되려는 듯 함께 앉는다. 벌이 들어가기 좋게 통을 만들어 말벌이 좋아하는 향을 발라 놓으면 그 통에 들어가 나오지를 못한다. 이런 것들로 말벌을 십여 마리씩 잡기도 한다.

벌을 키우기 전에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이 그렇게 예쁘게 보이더니 지금은 벌의 천적이라는 생각이 떠올라 미워지기도 한다. 두꺼비는 징그러워서 피했는데 지금은 두꺼비와 만나면 잡아 없애는 용기도 생겼다. 

엉큼한 거미는 벌을 잡아먹는 원흉 중의 하나니 거미줄은 눈에 띌 때마다 걷어 버린다. 자연의 섭리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들이지만 벌을 키우면서 늘 긴장을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감시를 해야 한다.

삶의 선상에서 즐거움이 하나라면 괴로움은 아홉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나의 즐거움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 많은 괴로움을 참고 사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을 가진 모든 것, 동물이든 곤충이든 식물이든 괴로움을 겪는 것은 똑같다. 정상적인 환정에서 60일의 수명을 가진 벌이 한창 꿀을 거둬들이는 바쁜 철에는 보름으로 줄어든다. 

종족 보존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벌을 천적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사는 일이 이만저만한 괴로움이 아닐 것이다. 거기에 목숨을 단축시키면서까지 가족들 먹여 살리기 위해 힘들여 모아오는 꿀을 사람이 다 뺏으니 천적 중에 가장 큰 천적은 사람이다.

밤에 벌통 옆에 가면 하루 종일 날라 온 꿀의 수분을 날려 보내느라 날갯짓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낮에는 꿀을 가져오고 밤새 수분을 없애서 좋은 질의 꿀을 갈무리 해두어 겨울을 나려는 것이다. 

이렇게 애써 모은 꿀을 사람이 다 빼앗는다. 어디까지나 사람의 욕심을 위해서지만 사람은 꿀을 뺏어오는 대신 벌에게 대체 양식을 주면서 벌의 목숨을 더 강하게 보존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사람은 다른 천적들처럼 생명을 빼앗고 벌 자체를 먹어 치우지는 않는다. 봄이면 밀원이 되는 나무와 꽃을 심어주고, 여름이면 시원하게 햇빛을 막아주고, 비가 오면 습기가 차지 않고 쾌적하게 지내도록 해 주고, 겨울이면 춥지 않게 보온을 해 주니 사람은 천적이면서 은인이라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온다.

벌의 천적을 없애주는 것도 사람이 해주는 일이다. 천적을 제거해 주지 않으면 벌은 살아남지를 못한다. 사람과 벌은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사는 사이다.

벌을 죽이는 천적을 잡아 주려고 오늘도 벌통 옆에서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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