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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좁은 놈
  • 중앙신문
  • 승인 2019.09.0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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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회의에 늦었다. 모두 참석한 자리를 가로지르며 들어가니 이 사람 저 사람 인사를 한다. 안녕, 오랜만입니다, 건강은 어떠세요. 바쁘시군요. 인사를 받고 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한 여인이 유독 눈에 밟힌다. 아는 여잔데, 왜 인사가 없지, 왜 빤히 쳐다만 보는 거지, 내가 결례를 했나, 찾아가 인사를 할 걸, 타이밍을 놓쳤나, 왜 그럴까, 왜 소원해진 걸까. 내가 소홀히 했나, 왕래가 적었나.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회의가 끝나 떠날 무렵 그녀가 찾아와 옆에 앉았다. 들어올 때 인사를 했는데 받지도 않으시고.

그러면 그렇지. 내가 못 봤구나. 내가 결례를 했어. 내가 찾아가 먼저 인사를 할 걸.

그걸 보면 나는 속 좁은 놈이다.

끊은 담배를 한 대, 두 대, 장난 삼아 피운 게 화근이었다. 날이 갈수록 담배의 유혹이 증가한다. 담배가 나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친구의 담배가 아니면 절대 어떤 누구의 담배라도 사양했다. 며칠에서, 몇 주, 몇 달이 지나고 나니 드디어 얻어 피우기 시작했다. 이사람, 저 사람, 담배 피우는 사람만 보면 쫓아가 달래서 피웠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담배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연배가 비슷한 사람을 찾아 얻어 피우던 것이 나보다 어린 사람의 담배도 거침없이 얻어 피우고, 피우다 맞담배가 되기도 했다.

서서히 인이 배고 있다. 오늘도 그렇다. 한 대 얻어 피울 생각으로 퇴근길에 들렀는데 샤워 중이다. 기다린다, 그가 보고 싶은 게 아니라 담배 땜에, 기다리다 무료해서 수필 다섯 편을 내리 읽었다. 그래도 나오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 이것 봐라. 비싼 담배 얻어 피우니 배척하기 시작하는구나. 내가 왔는데도 이 시간까지 나오지 않는다면 내가 싫다는 반증이다. 이제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자동차 시동을 걸고 떠나려는데 나왔다. 담배 한대 피워 물고. 형님이 기다리는 줄 몰랐어요. 문짝만 두드리고 아무 말도 안 해서….

심부름을 한 여자가 쓸데없이 말 많은 걸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럼 그렇지. 내가 또 한 사람 잃을 뻔했구나. 친분이 두터운 여자다. 그녀가 지난 2년 동안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백일장 문제, 문예지 문제, 사사건건 안티(anti)를 걸어 직원들을 귀찮게 했고, 나를 피곤하게 했다. 한마디로 이젠 보기 싫었다. 여자의 아우라조차 사라졌다.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마주 대하는 것도 싫었다. 지난해도 몇 차례 찾아온 걸 냉담하게 보냈다.

문화의 전당에서 세계 명작 전시를 할 때 가끔 관람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가기로 했다. 동행하기로 한 남자가 항상 같이 가던 여자에게 연락을 해 약속을 해놓은 모양이다. 지난 2년 동안 수차례 속을 썩여 인연의 끈이 끊어진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어서, 이미 잘 알 줄로 아는데 그가 끈을 이어줄 양으로 만들어 놓은 자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돌아선 지 오래다. 출발하기 전에 여자를 찾아 같이 가자고 했다. 싫다. 가야 한다. 안 된다. 내 평생소원이다, 이번 한 번만 내 말을 따르라. 그래도 안 돼. 돌아서 미술 관람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여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는 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인연을 헌신짝 버리듯 그렇게 버릴수 있느냐. 개인 자격으로 충돌했던 게 아니지 않느냐.

내가 그 직을 그만 두었으니 모두 끝났다. 그렇게 심대한 충격이 되었으리라 생각지 않았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한다. 자리는 언젠가 물러나지만 문학의 열정은 쉽게 가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열정으로 만났다. 언젠가 다시 만날 사람이다. 어찌 이리 생각하는지.

내 생각이 짧았다.

속 좁은 놈이다. 3 × (속 좁은 놈)

세 배 속 좁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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