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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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화의 길
  • 이상국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09.02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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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중국 관광 중에 일어난 일이다. 여행자가 기차역에서 잃어버린 스마트폰을 돌려받았고 호텔에 두고 나온 반지를 찾았다. 기차 역무원과 호텔 청소부의 선행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중국이 선진화되어가고 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우리는 돈 많은 사람을 문화인이라 하지 않는다. 우리는 폭발하던 문명화 과정을 기억한다. 자동차를 만들고 선박을 수출하고 가전제품을 나날이 새로운 제품으로 갈아치우며 컴퓨터 강국을 자랑하던 날을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진화 되었다고 말한 적이 없다. 아직도 분리수거를 무시하는 주부가 있으며 양심을 믿지 못해 CCTV에 의존해 잃어버린 돈을 찾고 범법자를 가린다.

태국에서 4개월 동안 살다가 돌아온 적이 있다. 당시 태국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100% 못 찾는다는 게 정설이었다. 귀국해 국내 관광 중인데 누군가 스마트폰을 잃었다. 아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던가, 누군가 보관하고 있을 거라고 장담했으며 우리 국민을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스마트폰은 영원히 찾지 못했다. 핸드폰과 스마트폰의 가격차가 심심치 않게 컸던 게 화근이었던가. 아니면 우리의 양심이 스마트폰 가격 앞에 무색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다행한 일은 태국에서 수박에 설탕물을 주사하고, 쓰레기 불법 투기가 만연하며, 교통단속 경찰이 공공연히 돈을 받아 챙기는 걸 보고 깔보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우리들도 그랬잖아요.”

부끄러운 자기 과거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으니 선진화로 가는 대열에 무색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말하는 한국인이 없었다면 나는 그들을 깔보고 무시하고 말았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선진화 대열에 한참 뒤처진 인간이다.

우리에겐 생선에 납덩이를 넣어 무게를 늘려 폭리를 취하던 과거가 있었다. 곯아버린 참외를 잽싸게 팔아 치우고 자리를 뜨던 장마철의 썩은 상혼을 기억한다. 갑질이 횡행하던 시절이 있었고 추행과 폭력이 난무하던 부끄러운 날이 있었으며 건축 폐기물을 하천에 마구 버리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던때가 있었다. 기름띠가 바다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도회에서 6년 만에 귀향해 보니 남한강은 수영을 할 수 없는 강이 되고 말았다. 옷을 벗고 강물에 들어가니 요즘 TV에서나 볼 수 있는 기름띠가 강변을 점령하고 있었다.

해마다 봄이면 포커스 레티나, 팀 스피리트, 후리덤 볼트, 리졸브, 이름을 바꾸어가며 적의 방어 작전을 펴던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있었다. 이 훈련 과정에서 피해보상을 산출하기 위하여 현지 출장을 나온 미국인 변

호사가 하천에 무제한으로 버려진 쓰레기 더미를 보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창피했다. 그 창피를 안 내가 다행이었을까. 장마만 졌다 하면 팔당댐엔 하염없이 쌓이던 스티로폼에서 건축물 자재, 음식물찌꺼기, 동식물의 사체…. 그것들이 언제, 어떻게 치워졌는지. 쓰레기로 몸살을 앓던 난지도의 대란. 그리고 어찌하여 공원으로 변했는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는 걸 보면 우리나라의 복원능력 또한 대단하니 선진화가 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나라가 세계 선진국 순위 11위라는데 맞는 말인지. 전직 대통령들을 줄줄이 구속하고, 전직 대법원장 검찰 조사를 할까 말까 궁색한 과거 뒤집기. 실은 과거를 감추고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솔직히 털어놓고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옳은 일일지도 모른다.

문명화의 길은 쉬운 일이다. 과학의 발달로 만들어진 신소재, 새로운 건축공법, 첨단 무기, 생활패턴, 인프라, 컴퓨터, 디지털…. 선진국들이 수십 년 수백 년의 시행 착오를 거쳤지만 개발도상국은 하루 이틀 뚝딱 사들이 거나 두드려 만들어 놓으면 손색없는 신도시, 신세계가 우뚝 세워지는 법. 이제 땟국으로 번들거리던, 도둑과짝퉁, 빈민가로 점철을 이루던 중국이 아니다. 거대 도시가 우후죽순 솟아오르고 매일 화려한 야경이 출몰하며 기차는 광활한 국토를 시속 300km로 가로지른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선진화나 문화 운운하지 않는다.

오랜 학습과 도야, 수행으로 이루어진 인격의 소유자들이 경영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야 비로소 문화가 꽃핀다고 말할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깔레의 시민, 영국의 신사도, 독립을 위하여 재산과 목숨을 버린 이시영 형제. 이런 희생이 가능한 양심 앞이라야 감히 문화를 말할 자격이 있다.

인간이 유구한 역사를 통해 추구해 온 것은 자기를 찾는 역정歷程이 아니었을까. 성경에서 말하는 자기 안의 천국,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윤동주의 서시. 그 앞에서 우리는 정직한 나를 찾고 양심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직한 자기 고백 앞에 우리는 경건해지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선진화의 길일 것이다.

한꺼번에 산업혁명의 물결이 몰아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우리는 그리스로부터 로마,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순차적으로 문명화 되었던 토인비의 ‘문명서진설’을믿었다. 그러나 중국은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고 중국의

문명화는 생각지 못했다. 모든 문명은 오로지 우리나라에서 정점을 찍고 말리라 생각했으며 중국이 우리나라를 추월하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중국의 축구가 한국 축구를 따라 잡지 못하는 것처럼.

그러나 러시아 귀화인 박노자는 향후 한국의 경제에 관하여 ‘중화권 편입의 장기적 불가피성’을 이야기해 찬물을 끼얹은 바 있고 중국 축구가 한국 축구를 넘보기 시작했으며 스마트폰의 시장 점유율은 삼성을 제쳤다.

우리는 중국에 맹렬하게 추월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진화의 길 - 양심까지 추월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원래 중국에서 배웠다는 것을 기억하라.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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