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확과 청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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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확과 청개구리
  • 유지순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08.28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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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유지순 | 돌확 속 물옥잠화에 진한 가을 물이 들고 있다. 가을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면서, 여름내 왕성하게 자랐던 그 기세가 조금씩 꺾이더니 지금은 완연히 사그라질 듯 바뀌고 있다.

돌확은 보기만 해도 정겹다. 직사각형과 둥근 모양, 우리 집 돌확처럼 네모반듯한 돌에 가운데를 둥글게 판 것도 있다. 날씨가 풀리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수생식물을 기르고, 겨울이면 그 안에서 자라던 식물이 얼어 스러진다.

우리 집이 위치한 곳이 절터였는데, 그 절터에는 오랜 세월이 흐른 탓인지 아무 흔적도 없고, 이 돌확만 남았다. 고창 선운사에도 이것과 같은 돌확이 있어 스님께 그 용도를 물어보니 물을 담아 놓고, 손도 씻는 용도로 쓰인다고 했다. 우리 집 돌확을 쓰던 스님들은 어떤 분들이었을까. 돌확은 의구(依舊)한데 사람 냄새는 맡을 수가 없고, 절터에 오직 하나 남은 돌확은 어떤 얘기들을 품고 있을지 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돌확은 겨울에 거실에 놓고 식물을 기르면, 습도조절도 되고 좋긴 할 테지만, 덩치 큰 돌이라 무거워서 움직이기 어려워 그냥 화단 한 구석에서 눈과 얼음, 바람과 햇빛만을 담고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 절터에 모든 것이 사라졌어도 무겁고 썩지 않는 이 돌확만 남은 것 같다.

초록 색깔이 누런색으로 변해가고 있는 돌확 속의 물옥잠화와 어울려 함께 살던 청개구리 두 마리가 물 밖으로 나와 햇볕을 쪼이며 앉아 있다. 청개구리는 주위 환경에 따라 몸빛깔이 변해서 그런지, 여름에는 초록색이더니 가을이 되니 연둣빛으로 변했다. 손가락 마디만한 놈들이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

여름내 물에서 장구벌레와 벗하며 잘 지냈을 텐데, 동면을 할 편안한 곳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저 작은 파충류의 고민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안쓰럽다. 살아 있는 생명이니 자연의 변화 속에서 늘 시달림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엄마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에게 꼭 청개구리 같다는 말을 한다. 모든 일에 엇나가고 거꾸로 가는 아이와 비유를 했다. 왜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청개구리를 전래동화에서 무엇이든 반대로 하는 심술궂은 개구리로 표현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여름이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청개구리가 나무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을 많이 본다. 지구의 파괴와 비례하여 멸종되는 종(種)에 속한 개구리는 아닌지…. 하루 빨리 좋은 안식처 찾아 편안히 동면하고 내년 경칩에 다시 반갑게 만나자고 말을 건네 본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두 마리가 함께 폴짝 뛰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헤엄을 친다.

아직은 그래도 헤엄을 칠 수 있는 물과 햇볕이 있고, 먹을 것이 있으니 다행이다. 곧 닥칠 수운 겨울을 그것들도 감지하고 있을까.

청개구리는 겨울을 잘 나고, 봄이 오면 세상으로 나와 돌확에서 새로운 물옥잠화를 만나 세상 구경을 하며, 다시 겨울이 올 때까지 잘 지내는 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혹독한 자연에 적응하며 생명을 이어가는 신비가 모든 생명 앞에 경외심을 갖게 된다.

나는 햇볕이 잘 드는 거실 창가에 앉아 추워지는 날씨에 이렇게 따뜻한 곳에서 지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곧 제 구실을 못하고 쓸쓸하게 비어 있을 돌확과 내년을 기약하며, 겨울잠에 들어야 하는 청개구리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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