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 칼럼]비 오는날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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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비 오는날의 사색
  • 중앙신문
  • 승인 2019.08.1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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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모닝콜처럼 들려온 요란한 빗소리로 인해 잠을 깼다. 창문가로 다가가 하늘을 바라다보니 비에 젖어 얼룩진 하늘은 아침을 열어놓고도 빗장이 풀린 듯 밤새도록 쏟은 빗줄기를 멈출 줄을 모른다. 텔레비전을 켜니 방송국마다 뉴스보다는 장마에 대한 일기예보를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호우경보와 아울러 재해예방과 관련된 각종 주의사항을 당부한다.

사는 곳이 비교적 안전지대에 위치해서 수해로 인한 직접적 피해가 없다 보니 정규 방송시간을 중단해가며 반복해대는 방송국의 재난방송이 고맙기보다는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중부지방에 내려진 호우경보로 오늘 하루의 외출 계획을 접고 나니 왠지 거주를 집안으로 제한받는 죄수 같아서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갑갑해진다.

연일 무더운 날씨와 꿉꿉한 습기로 인해 정리가 제대로 안되고 산만해진 거실 소파에 앉아 비 오는 날의 창밖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발길을 꽁꽁 묶어놓은 소나기는 더위를 식혀주는 도시의 분수처럼 시원하게 쏟아져내렸고 난타 음악제의 축제처럼 광란의 소리를 내면서 거친 리듬을 조율한다.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마음은 점점 우수에 잠겨 들고 거친 탁류가 되어서 한없이 떠내려간다.

사람들은 비 오는 날 꽃 보기에 있어 장미꽃보다는 우산처럼 활짝 펴진 연꽃의 자태를 더 좋아라 하고 수채화를 가슴속에 담는다. 질퍽하게 쏟아졌던 소나기가 오후에 가서야 그쳤다. 비가 멈추자 이때다 싶어 매미가 맴맴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산속의 비둘기도 구구구 합세를 한다.

하늘이 개이자 행동이 자유스러워져 하천을 범람하는 물구경을 갈까 하다 생각을 바꿔 휴양림이 되다시피 한 뒷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실바람이 솔솔 부는 산길에 올라서자 빗물이 채 마르지 않은 숲은 가지와 나뭇잎에 배어든 물방울을 털어내는 몸단장을 하느라 부산해서 사람이 다가가도 평소와는 달리 반기는 기색이 없고 하던 동작을 멈추지 않는다. 구불구불한 등산로를 돌아서자 인기척에 깜짝 놀란 산꿩이 프르릉 날아오르고 나무 위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던 청설모가 사람의 출현에 긴장하여 고개를 반짝 들고 시종 경계를 한다.

비가 지나간 숲 속은 물먹은 나무와 풀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초록빛을 보란 듯이 발산하고 싱그러운 향기가 박하향처럼 콧속까지 스며든다.

산을 걷다 보면 새소리 바람소리가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 귓속에 닿고, 이를 감상하는 즐거움 속에 저절로 흥이 난다. 등산객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나무 계단을 따라 숨을 고르며 작은 정상에 오르니 탁 트인 하늘과 바둑판같은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고, 생활환경 오염으로 황사처럼 뿌였게 보였던 도시의 건물들이 대청소를 한 듯이 산뜻한 모습을 자랑한다.

쉼터로 만들어진 작은 공간의 벤치에 앉아 도시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자니 장마로 인해 물러설 줄 알았던 유들유들한 더위가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끈적끈적한 땀을 몸 밖으로 쉴 새 없이 배출시킨다.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한 더위는 얄밉게도 또다시 불가마처럼 달궈져서 극성스러운 모기떼 와도 같이 낮과 밤을 구별하지 않고 괴롭혀댄다. 난개발로 인해 인간이 자연환경을 극도로 훼손시킨 결과 전 세계가 환경변화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고, 우리나라도 여름철에는 생각지도 않은 열대야가 발생하여 사람들의 밤잠을 설치게 하고 패닉 상태와 같은 불안 심리를 발생케 한다.

사막처럼 적응이 안되고 사람 사는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열대야는 짜증 만주고 자연환경은 환경대로 몸살을 앓게 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기 위한 무서운 집념은 아프리카의 고온 지대와 설한의 남극과 북극 지역에서도 보듯이 극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의 생존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무덥기로 소문난 아프리카 지역 말고도 아열대 기후 속에 살아가는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기후를 우리는 한때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왔다. 고온현상이 매일 반복되는 아열대 기후의 찜통더위는 사람이 살아가기에 극히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사람이 존재하고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루에 한 번씩 더위를 식혀주는 스콜이라는 소나기가 지표의 온도를 식혀주고 동식물의 성장을 돕기 때문이다.

무릇 하늘은 자연과의 공존을 통해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혜택을 주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경우 환경변화로 인해 열대야가 극성을 부리지만 더위를 식혀줄 스콜과 같은 비가 내리지 않아 여름 나기가 무척 힘들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장마가 도와준다. 장마는 찌는듯한 더위를 조정하고 산과 강의 경관을 섬세하게 변화시켜 대지를 새롭게 정화시킨다. 긴장마는 모두가 싫증을 느끼지만 사람들은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빗속에서 사랑을 갈무리하고 아름다운 추억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것을 반기는 것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동식물도 반기고 고마워한다. 식물은 비를 맞아 엽 녹색의 몸체를 불리고 동물들은 매일같이 물가를 찾아야 하는 부담을 덜어내고 내린 비로 목마른 갈증을 해소한다. 비는 물이 되어 만물의 생명을 구원하는 생명수인 것이다. 그런 귀중함을 생각할 때 햇빛 쏟아지는 많은 날에서 벗어나서 오늘만은 비를 맞으며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처럼 비 오는 날이 더 좋아지고 고마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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