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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국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08.0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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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이상국 | 복권을 샀다.

아내의 말대로 복권은 돼지꿈, 똥꿈 정도는 꾸어 놓고 사야 한다는데, 오늘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똥꿈도 돼지 꿈도 아니 꾸고, 하나님을 비롯해서 알라신, 바알신, 부처님, 공자님, 조강신… 어느 신의 어떤 계시를 받은 것도 없건만 무턱대고 무작정 샀다.

돈이 궁해졌다. 매달 아내로부터 100여만 원의 돈을 지원받건만 사무실 임대료, 전기료, 전화사용료니 뭐니 해서 그 돈이 모자라는 것이다. 하여튼 우선 급한 돈이 그런 것들이다. 우선 그런 것이라도 해결하고 이런저런 빚 모두 갚고 아들들에게 남기고 죽으려면 최소 수십억 원은 필요하다. 그래서 일단 매주 만 원씩 복권을 산다.

복권 마니아처럼 몇십만 원씩 복권 살 돈도 없고 그렇게 까지 복권에 미치고 싶지도 않다. 하여튼 나는 복권을 사야 하고 복권에 당첨돼야 한다. 죽기 전에 얼마짜리 복권이라도 맞아야 한다.

그런데 그놈의 복권이 영 맞아주지를 않는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부동산인데 그것도 완전 불경기라 손을 뗄 작정이다.

아버지가 그랬다. 젊어 작은 면 단위 30여 개 부락에서 최고 갑부가 되었다. 그 돈의 근원지 초등학교 앞 문방구를 숙부님에게 넘기고 농사를 짓는데 생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우선 신체조건이 농사꾼으로 맞지 않았다.

쌀 한 가마 들어 올리는 것, 삽질 하나, 쟁기질, 써레질 하나하나 아버지의 신체조건에 맞지 않을뿐더러 남들 몇십 년씩 농사에 숙달되는 동안 문방구만 경영하셨으니 농사는 농사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겉돌 뿐이었다. 당신 손으론 감당이 안 돼 하나하나 남의 손을 사니 인건비가 여간이 아니다. 동네 정미소를 운영하다가 자전거포, 빵집, 석유가게 등등 안 해 본 것 없이 마구잡이로 전전긍긍하시다가 홀연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리고 한참 뒤 아버님의 그 많던 재산은 어디로 갔는지 궁금증이 증폭되어 갈 즈음, 서울 고모님이 오셔서 한밤중 어머니와 은밀히 속삭이는데 정미소를 팔아 그 돈으로 버스 사업을 하러 서울로 올라가다 소매치기를 당하신 것이다. 생전에 어느 누구에게도 한 마디 안 하시고 돌아가셨으니 누구는 노름으로 탕진했느니, 누구는 바람이 난 것 아니냐는 억측이 난무했지만 고모님의 말씀이 가장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얼마나 가슴 아프셨을까. 젊은 날에 쌓아 올렸던 부富만큼 단시간 내에 복구해 보고 싶은 심리를 누가 알았을까. 급한 마음에 이것, 저것 마구잡이로 달려들어 보지만 쉽게 자리를 내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 말년의 불행, 그 대를 잇는 것인지, 나도 공무원을 그만두고 복덕방을 몇 차례 하다 그만두고, 하다 그만두고를 반복 중이다. 해야 할 수필은 아니 쓰고 엉뚱한 돈을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이다. 수필을 써서 돈이 된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인데 그나마도 삼류 수필가가 아닌지. 하긴 일류 수필가의 책도 팔리지 않는 세상인데 내 수필이 팔릴 리 없건만, 수필 쓰고 부동산 하고, 복권 사니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자신 있는 것 재미있는 것 하고 싶은 것 하나만 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다 집적거리니 될 것도 안 되는 듯하다.

수필을 쓰려면 맹렬히 써야 한다. 맹렬히 읽고 맹렬히 수업에 참여해서 공부하고 맹렬히 이런저런 회의에 참석하고 조직에 가담하고 조직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회비, 이사비, 광고비, 편집비, 군소리 말고 달라는 대로내야 하고 글은 달라는 대로 마구잡이로 퍼 주어야 한다. 경제 운운, 내 글이 어떤 글인데 하며 아끼거나 글 존심 찾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무조건 퍼주고 보아야한다.

부동산도 그렇다. 한 번 망하면 다시 몫 좋은 자리를 물색하여 1억 원 이상 깨질 각오를 하고 극렬하게 대들어야 한다. 인터넷을 줄기차게 구사해야 하며 모든 정보에 오감을 총동원하여 고객들의 미세한 움직임마저 간파해야 한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탐사를 해야 하며 모든 물건 관리에 철저를 기할 것이며 인터넷 출입을 낯설어 해서도 안 된다. 고객과 부딪히기를 겁내지 말 것이며 모든 친목회에 가담하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이 고객이 찾아오는 길이며 모든 것이 돈벌이의 출발점이란 것을 잊지 말 일이다.

마지막으로 복권이다. 복권도 마니아가 따로 있다. 일단 미치고 볼일이다. 복권은 원인과 결과가 일치하는 인과법칙에 따르지 않는다. 모든 것이 혼돈이고 불확정성의 원리를 따른다. 복권에서 뉴턴의 제일 법칙이니, 제 이 법칙을 운운하지 말아라. 18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라플라스 박사와 같이 모든 것을 등식의 원리에 의한 방정식으로 풀려 하지 말아라. 인과법칙은 아인슈타인에서 끝났다. 스티븐 호킹은 신은 주사위를 던진다고 말함으로써 양자역학의 혼돈과 불확실성을 옹호한 바 있다.

아내의 말과 같이 모든 꿈은 복권과 연결시켜 연상하고 그에 따라 계시라 생각하라. 주저하지 말고 투자하라. 복권의 당첨 확률은 814만분의 1, 두 장을 사면 407만분의 1, 100장을 사면 81만 2천분의 1로 확실히 가능성은 좁혀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꼭 맞아주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쉴 새 없이 사고 맞추고, 맞추고 사고를 끈질기게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옛날엔 저급한 인간들만 찾아 횡재를 바라는 잡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만민이 즐기는 놀이가 되었다.

어차피 인간은 운에 의하여 태어났고 운에 따라 살아가는 것. 운에 의하여 갑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 금수저를 물고 다닌다. 그게 절대 인과법칙에 의한 것은 아니다. 누가 알랴. 나의 운이 어디로 튈지.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복권을 절대로 사지도 않았고 일삼아 들여다본 일도 없으며 사행심을 부추기니 철폐 되어야 하는 악습이라고 질타한 나다. 그러나 지금은 돈버는 또 다른 직업이라 긍정해야 한다.

요즘 세상에서 사업을 벌인다는 것은 바늘귀에 낙타가 들어가는 것만큼 힘들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 확률은 겨우 20%.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인생역전의 길은 오로지 복권. 다음 주에도 복권을 살 것이다.

다음, 다음 주에 지구가 무너진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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