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 칼럼]갈대의 유혹
상태바
[김영택 칼럼]갈대의 유혹
  • 중앙신문
  • 승인 2019.08.05 15: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택 (칼럼위원)

서울의 한강변 둔치처럼 잘 정리된 이천 복하천을 아침저녁차를 타고 지나다닌다. 매일같이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복하천은 계절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하여 사람들을 대하고 있다. 봄에는 하천변에 푸른 보리싹을 키워 녹색환경을 조성했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줄기를 흘러내려 피서지를 만들었으며 가을엔 수천 평 부지를 하얗게 뒤덮은 메밀꽃 단지를 만들어서 꽃의 낙원을 만들었다. 또 겨울은 황량한 벌판이 되어서 바람이 쉬어갔다.

이천에 이사 와 산 지도 꽤 오래되었다. 이천에 정착한 것은 80년대 중반기였다 그 당시만 해도 복하천은 난개발로 피해가 극심한 수질오염 지역이었다.

공장폐수와 축산폐수 생활 오수 등이 뒤범벅이 되어 흐르는 물은 비눗물처럼 거품을 내뿜었고 심한 악취로 인해 사람들은 하천에 가기를 꺼렸고 멀리했었다.

이후 맑은 물 가꾸기 운동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하천정비 사업을 통해 물줄기가 바로잡혔고 넓은 하천부지에는 각종 운동시설과 화훼류가 재배되어 시민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옛 모습을 되찾은 복하천은 맑은 물을 하류로 졸졸 흘렸다. 복하천이 맑아지자 멀리 떠났던 백로와 왜가리가 다시 찾아들었고 잘 정비된 하천은 쉼터가 부족한 시민들의 공원이 되어 매일매일 사람들을 반겼다. 고향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떠들썩한 친목회 장소로 안성맞춤이었고 일반 시민에게는 여과 장소로 하루를 보내기에 최적지였다.

봄여름 가을 복하천은 친목회를 알리는 대문짝만 한 홍보물이 넘쳐났고 소 운동회 장소가 되다시피 사람들로 넘쳐났다. 80년대 초기만 해도 교량 하나로 교통량을 수용해오던 복하교는 늘어나는 교통체증을 감당할 수가 없어 복하 2교를 증설해 교통량을 분산시켰다.

하천의 이용률도 종전 복하 1교 주변의 개간지와 포락지 주변에는 꽃을 심어 오가는 사람들의 볼거리를 제공했고 운동시설이 들어선 복하 2교 주변은 헬스장 모양 시민들이 찾아오는 체육공원이 되었다.

수년 전만 해도 출퇴근 시 나는 복하 2교의 단골손님이었다 퇴직 후 생활이 바뀌다 보니 2교보다는 1교 이용률이 더 많아졌다. 차를 운행하며 오가는 사이 자연스럽게 복하 1교 주변의 환경이 눈에 들어왔고 띄었다. 다리를 중심으로 양쪽의 환경을 비교해보니 하류의 하천은 봄에는 보리가 자랐고 가을은 메밀이 심어져 볼거리를 제공한 반면 상류의 하천변은 아무것도 심지 않은 채 잡초가 무성한 풀밭이었다. 봄에 자라난 작은 풀들은 꽃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경관에 휩싸여 아름답게 보였지만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나고 방치된 하천의 풀숲은 제초작업이 간헐적으로 필요했다.

더구나 장마 때에는 떠내려온 각종 부유물이 사방으로 널려져 주변 환경을 훼손시켰고 보기에도 지저분했다. 그래도 복하천의 풀들은 유수 조절 때문인지 삭벌 되지 않고 무성하게 자라났다. 여름 더위가 물러나니까 어느덧 가을이 찾아왔다. 하류 쪽 하천 바닥에 심긴 메밀이 하얀 꽃을 피우고 사람들을 불러드렸다. 몰려든 사람들은 꽃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빴고 벌 나비가 된 것처럼 꽃밭을 윙윙거리며 이 꽃 저 꽃 옮겨 다녔다.

한동안 메밀꽃 자태에 빠져 상류 쪽 하천에는 관심이 없는 사이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쓸모없는 풀로밖에 생각지 않았던 하천 바닥 숲에서 누런 꽃들이 피어나 꽃밭을 만들더니 바람에 그 아름다움을 연실 출렁거렸다.

예기치 못한 야생화의 출현에 차를 멈추고 자세히 보니 그것은 놀랍게도 갈대였다. 대자연은 어느새 잡초로만 여기고 외면했던 풀밭을 조용히 키워서 꽃을 피우게 한 것이었다. 가을바람에 파도를 치는듯한 갈대밭을 바라다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갈대밭 속에 뛰어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나도 모르게 갈대숲 속으로 텀벙 뛰어들었다.

갈대숲에 들어서니 가슴 높이까지 차오는 풀들의 보드라운 감촉과 더불어 얼굴을 간지럽히는 속삭임에 잠시 황홀경에 젖었으나 사람의 출현에 긴장한 풀벌레 소리가 경보음 같아 말초신경을 곤두세우게 한다.

발밑을 보니 아무도 지나칠 것 같지 않은 숲속에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는 발자국이 눈에 띄어 반가움이 들고 금방이라도 갈대숲을 어지럽힌 발자국의 주인공들이 나타날 것 같아 설렘에 주위를 살피게 한다. 낙엽을 밟는듯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갈대숲을 계속 헤쳐나가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갈대숲 속에서 어디선가 들짐승이 나를 노려 보는 것 같아 으스스하다. 동물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금방이라도 멧돼지가 달려들 것 같고 쫑긋 놀란 고라니가 눈앞에서 달아날 것만 같다.

그런 과정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움찔하는 내 모습에 갈대가 누런 이를 드러내 놓고 바람에 깔깔거린다. 한낮에 동반자를 자청해서 따라나선 바람이 지친 듯 숨을 고르자 황혼이 저만치서 깃들기 시작했다. 갈대숲을 뚫고 가슴 사이로 번지는 석양의 노을이 유난히 아름답다. 터널처럼 긴 갈대숲을 부지런히 빠져나오자 한낮에 등정을 한 것처럼 이마에 땀방울이 몽글몽글 솟는다. 

잠시 땀을 식히고 차로 돌아와 갈대밭을 바라다보니 갈대가 온몸을 흔들어대며 되돌아오라고 졸라댄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고양시 신청사 ‘주교 제1공영주차장’으로 최종 선정
  • 이재명 대법원 선고, 언제 나오나?
  •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생활임금 보장' 촉구 기자회견 개최
  •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서울경기지회장에 김완수 교수 위촉
  • 시흥시 배곧생명공원서 7월부터 ‘순찰 로봇’ 운영
  • 하남시 교산 신도시 교통대책 확정···“5철·5고·5광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