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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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벌통
  • 유지순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07.2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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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유지순 | 사람이나 미물이나 자기들만의 은밀한 사생활이 남에게 보여 지는 것은 싫은 모양이다. 벌들을 안이 보이는 투명벌통으로 옮겨 놓으니 사람들이 들여다보는 것이 부담스러운 듯 요란한 몸짓으로 시위를 하는 것 같다.

공부하느라 바빠서 얼굴을 볼 수 없는 손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벌통을 준비했다. 벌이 집안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투명벌통이라 벌의 움직임이 흥미롭다.

벌통은 보통 나무로 되어있다. 겨울이면 추위를 막아 주려고 스티로폼 벌통으로 벌을 옮겨 주기도 하지만 자연을 소재로 한 나무 벌통이 제일 좋다.

 나무벌통에서 살던 모습 그대로를 투명벌통으로 옮겨 놓으니 벌의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재미있는지 아이들이 벌통에 붙어 떨어지지를 않는다. 머리에는 벌에 쏘이지 않도록 망을 쓰고, 옷은 단단히 여며 벌이 쏠 수 없게 차비를 한 손자손녀 서넛이 벌통에 붙어 신기한 듯 들여다본다.

아이들에게 볼거리와 놀 거리가 많은 시골에 와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하도록 했으면 좋은데 공부하느라 바빠서 좀체 시골에 올 기회가 없다. 오리 내외는 손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여러 가지 이벤트를 철마다 다르게 마련해 놓고 손자들을 기다린다.

봄에는 작은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을 여러 생명이 깃들어 움직이며 새끼를 낳아 커가는 모습이 볼거리이고, 산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이 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밭에 고구마도 심고 여러 가지 씨앗도 뿌리는 작업을 하게 계획을 한다. 여름이면 뿌려놓고 심어 놓은 작물이 얼마나 풀에 시달리며 고생을 하는지 보고 풀을 뽑는 법도 가르친다.

겨울에 물이 얼면 연못에서 썰매를 타고, 눈이 내리면 산에 면한 작은 언덕에서 눈썰매를 타려고 손자들이 겨울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난로에 불을 피우고, 눈 위에 모닥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 먹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이렇게 시골에 와서 모든 것 다 잊고 마음껏 맑은 공기 마시며 자연과 함께 지낸 하루는 마음을 살찌우게 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은 투명벌통에서 벌들의 움직임을 보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벌도 환경이 바뀌거나 주위가 시끄러우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손자들이 떠나면 바로 벌들을 나무 벌통으로 옮겨야 한다.

벌은 고생을 했지만 아이들의 즐거웠던 시간들이 이렇게 흘러갔다. 아이들이 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생명의 존엄성과 존재의 필요성을 배웠다면 귀중한 하루가 되었을 것이다.

조직을 위해 협동하면서 생명을 바쳐 각자 맡은 역할을 해내는 꿀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삶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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