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그 섬에 가고싶다] ③자전거 타고 ‘교동도’ 섬 여행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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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그 섬에 가고싶다] ③자전거 타고 ‘교동도’ 섬 여행 떠나요
  • 김선구 기자  ksk@joongang.tv
  • 승인 2019.07.1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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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책길 따라 달리는 평화나들길, 제비가 풍요를 몰고 오는 평화의 섬 '교동도'
교동도는 면적이 46.9㎢로 강화 섬중에서 가장 넓은 경작지를 가지고 있다. 섬 전체를 돌아보려면 자전거를 타는 게 좋다. (사진=김선구 기자)

| 중앙신문=김선구 기자 | 교동도는 초록의 물결이다. 드넓은 평야에 초록색 벼 이삭이 바닷바람에 흔들리며 물결을 이룬다. 곳곳을 지날 때마다 논을 점령한 참새떼들이 후드득 날아오른다. 평일에 찾은 교동도는 한산했다. 교동연륙교가 개통되면서 배로 가는 교통편은 끊겨 항구에는 고기잡이 어선만 정박해 있다. 제비가 많아 유명한 교동도는 각종 섬 새들이 곳곳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인천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하는 교동도는 면적 46.9㎢, 인구 3600여 명이 살아가는 작은 섬이다. 하지만 경작지 면적은 강화군 내에서 가장 넓다. 이 넓은 섬을 한 바퀴 다 돌아보려면 자전거 타고 움직이는 게 좋다. 교동도 섬을 크게 한 바퀴 돌면 30km가 넘는다.

교동제비집은 제비가 고향으로 돌아오듯이 북한 연백리에서 피난와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의 마음을 담고 있다. (사진=김선구 기자)

자전거를 대여하기 위해 교동 제비집을 먼저 찾았다. 교동도 여행의 백미는 북한과 가까운 거리의 민통선 내 위치한 철책선을 따라 달리는 평화나들길이다. 교동 제비집은 교동도의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안내해주는 관광안내소이면서 자전거 대여소이기도 하다. 지도를 하나 받아 들고 자전거를 한 대 빌려 섬을 크게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교동도는 인천시 서해안에 놓여 있으며 동남은 양사면, 삼산면, 서도면과 마주하고 있으며 서북으로는 불과 3km 밖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군사분계선을 이르고 있어 황해도 연백군이 눈앞에 보인다. 도서라고는 하지만 비교적 평야가 많으며 해안선은 평탄한 편이고 해저는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심하다.

본래 강화 본도와 교동도를 오가는 교통수단은 매시간 1회 운영되는 배편이 유일하였는데, 2014년 7월 인천시 강화 본도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연륙교가 개통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크게 늘었다.

자전거를 타고 교동읍성으로 방향을 잡고 출발했다. 제일 먼저 끝도 없이 펼쳐진 초록의 논이 이어진다. 자전거가 지나갈 때마다 곳곳에 숨어있던 참새떼들이 화들짝 놀라 무리지어 날아오른다.

교동읍성은 인조 7년인 1629년에 경기수영을 설치하면서 축조했으며 현재는 남문의 홍예문만 남아있다. (사진=김선구 기자)

교동읍성을 볼 수 있는 화주길로 자전거 페달을 굴린다. 교동도 자전거길은 길 한쪽에 파란색으로 표시를 해두었다. 길이 좁아 간혹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만 길은 또 연결된다. 교동읍성은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었다. 둘레는 430m, 높이는 약 6m이다. 교동읍성은 인조 7년인 1629년에 경기수영을 설치하면서 축조했으며 현재는 남문의 홍예문만 남아있다.

교동읍성으로 들어서면 교동향교와 화개사도 볼 수 있다. 교동향교는 고려 충렬왕 12년(1286년)에 문선공 안유 선생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이곳에 처음으로 모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교동향교에서 붓글씨 쓰기 등 행사가 열린다. 화개사는 고려때 창건, 1967년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이듬해에 중수했다. 현재는 자그마한 법당만 있는 사찰이다.

교동향교에서는 매년 5월부터 10월까지 선비옷 체험하기, 우리집 가훈 쓰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사진=김선구 기자)
화개사는 고려때 창건해 1967년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이듬해 중수했다. (사진=김선구 기자)

교동도는 조신시대 왕족의 유배지였다. 고려 때 희종이 최충헌에 의해 폐위되어 이곳으로 귀양 왔고 중종반정으로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 광해군의 형 임해군, 동생 능창대군이 이곳으로 귀양을 왔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주로 왕족들이 귀양을 왔다.

강화나들길을 따라 3km를 가니 포구가 나온다. 교동연륙교가 놓이면서 사람을 실어나르는 배편은 끊기고 고기잡이배 몇 척이 정박해 있다. 쓸쓸하지만 정겹다. 교동연륙교 방향으로 바다를 끼고 자전거를 힘차게 밟으면 섬과 바다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교동연륙교가 개통되면서 사람을 실어나르는 배편은 사라지고 항구에는 고기잡이 배 몇 척이 정박해 있다. (사진=김선구 기자)

고구저수지를 지나면 본격적인 철책선 길이 나온다. 철책선 너머로 북한 땅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이 맑으면 사람의 모습도 보일 듯하다. 철책길을 따라가면 중간중간에 초소가 하나씩 나오는데 철책과 초소가 없었다면 이 너머가 북한인지 알 수 없을 듯 가까웠다. 도로 한쪽에 파란색 표시를 따라 평화자전거길을 무한정 달리다 보면 망향대가 나온다.

교동도 망향대에서 북한과의 거리는 2.6km에 불과하다.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모여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는 섬이다. 분단 이전에 교동도와 연백군은 같은 생활권이었다. 망향대는 6·25전쟁으로 교동도에 피난 온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며 연백군이 마주 보이는 곳에 비를 세웠고 매년 이곳에서 제사를 올린다.

철책선을 따라 달리는 평화나들길은 교동도 자전거 여행의 백미다. (사진=김선구 기자)
철책선 너머 북한 섬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진=김선구 기자)

분단되기 전, 강화도는 북한과 교류가 활발하던 곳이었다. 예성강을 통해 교역선이 오갔고 동네 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고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했다.

교동도에서 작지만 가장 큰 시장인 대룡시장은 이들 연백 사람들이 삶의 터전이 된 곳이다. 대룡시장은 60~70년대 풍경이 곳곳에 남아있어 관광 명소로 부상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남북한의 아픈 과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다.

연백에서 온 이발사가 운영하는 이발관, 여든이 훨씬 넘은 어르신이 지키는 약방, 옛날에 맛보았던 쌍화차를 파는 다방, 북한의 냉면 맛을 고스란히 살린 냉면집까지. 현대에 발맞춰 변화가 있었지만, 최대한 그때 그 모습을 보존돼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교동시장은 시장을 만든 어르신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인구도 급격히 줄어들면서 시장 규모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최근 드라마 촬영지로 나오면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김선구 기자)
교동도 대륭시장 입구. (사진=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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