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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에세이]보이스피싱
  • 중앙신문
  • 승인 2019.07.1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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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똑똑한 여자가 당했다. 무려 2천만원.

싼 이자에 현혹돼 대출받으려다 혹독하게 당한 것이다. 왜 세상은 그런 것인지. 왜 가난한 사람을 울려야 직성이 풀리는 건지. 싼 이자를 찾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난한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가난한 사람 돈 뜯어 먹자고 덫을 놓고 기다렸으며 미끼를 물자 인정사정없이 낚아챈 꼴이다.

가난한 자가 아니고 부유한 사람의 돈을 그랬다면 억울해 하지도 않는다. 잘하면 의적 반열에 끼일 수도 있다.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이 털어낸 사람들이 고관대작들이었다. 부자를 대상으로 했더라면 돈많은 사람이라는 공통분모의 일부라도 있으니 반쪽짜리 의적 반열에 낄 줄 몰라도 이건 그것도 못 될 뿐 아니려니와 지독한 졸장부에 치졸한 양아치 족속에 불과하다. 이 시대에 의적은 없다. 가난한 촌부의 가슴만 때리는 악한만이 도사리고 있다.

꽤 오래된 이야기다. 휴대전화는 물론 삐삐조차 없던시절, 군청 경리팀장을 맡아 볼 때, 부군수가 휴가를 떠난 지 몇 시간 후였다. 여직원이 전화를 바꿔주며 “부군수라고 하는데 부군수 목소리가 아닌데요”라고 했다.

정색을 하고 전화를 받아보니 부군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 부군순데, 지금 급한 사정이 생겼어. 천만 원만 송금해 줄래. 휴가 끝나면 돌려줄게.”

자신이 없다.

“글쎄요.”

얼버무렸다. 길게 끌면 탄로날까 두려운지, “허, 이 사람도” 끊어 버렸는데 사기 전화였다. 그 여직원이 아니었다면 내 경리팀장 목숨이 날아갈 순간이었다.

내가 당한 보이스피싱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늙어 대학 공부를 할 때다. 내일모레면 시험이다. 시험 전 온라인 수업을 시청해야 한다. 그런데 보이스피싱 수업 화면을 띄우면 여지없이 농협 화면이 뜨는데 기계 앞에서 항상 알짱거리고 지워지지 않는다. 이리 해도 안되고 저리해도 안 된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른 때 같으면 온라인 강좌를 열면 짠하고 밝은 화면이 떴는데 이게 뭐냐. 며칠을 두고 고생을 했다.

왜 농협에 전화를 안 했는지 모를 일이다. 무조건 한통화면 해결이 되는 건데. 그런데 전화를 한다는 게 화면 하단에 있는 전화로 했으니 사기꾼에게 직통 전화를 한 것이고 또 직통으로 걸린 것이다. 농협 전화를 따로적어놓고 쓴다면 모를까. 농협 전화를 다른 방법으로 전화를 거는 놈이 어디 있어, 인터넷 화면에 뜨는 전화로 후다닥 걸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거 아냐. 하여튼 그게 화근이었다. 통화가 이루어졌다.

그 화면을 빨리 없애 달라고 하자 그러면 이것 저것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정리해 놓고 나니 주민등록 번호를 여기에 기록해라. 핸드폰 번호를 대라. 그쯤에서 나는 아주 믿어 버렸고 사기꾼은 아주 친한 동료 또는 믿음직한 농협 직원인 척 능청을 떨었다. 밤 시간대. 밤 9시인가 10시. 아마 농협 정식 근무자라면 쉬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대에 근무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고, 빨리고약한 화면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였다. 내 정신은 오로지 시험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조건의 확보였다. 그는 노골적으로 코드표를 모두 적으란다. 그 많은 코드를 몽땅적어주고 비밀번호까지 내주었다. 그러니까 발가벗어 알몸까지 내준 꼴이었다. 한동안 시간이 걸렸다. 전화가 왔다. 다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악랄하게 따라붙던 화면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이다. 아, 하나님. 환희의 순간이었다. 오프라인이었다면 녀석 앞에 당장 엎드려 절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혹시 보이스피싱 아냐. 에이 그럴리야.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지우고 공부에 전념 했다.

다음 날 아침 미심쩍어 농협에서 통장 정리를 해 보 니, 아아, 잔고가 몽땅 빠져 나갔다. 90만 원. 농협에 신고해 기분 잡친 통장을 폐쇄하고 경찰서에 신고했다. 그런데 나는 무지 약 올라 죽겠는데 이리 와라 저리 가라, 며칠 후에 와라. 나는 내일모레 시험이야. 시험 끝난 뒤에 보자. 그러시든지.

자타가 공인하던 똑똑하다는 내가 보이스피싱에 걸리다니. 어디 가서 누구에게 하소연하랴.

솔직히 온라인으로 공부하는 사람 뻔하지 않은가. 돈없어 가난한 사람들이 더구나 젊어 못하고 나이 들어시작한 늙은 대학생들인데 그런 사람을 뜯어 먹다니 벼룩의 간을 내먹자는 심사가 아니고 무엇이랴.

제발 덜 억울한 돈 많은 사람들이나 뜯어 먹어라.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돈 많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방어막이 훌륭하게 쳐져 있는지. 그들이 사기를 당했다던가 도둑을 맞았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당하고도 말을 안 해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인지 몰라도.

고속도로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한 경험이 있는 막내 아들의 소견. 걸리는 사람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에 찌든 사람들만걸려든다는 것이다. 사장이나 금수저는 안 걸린다는데, 그들은 돈 많아 대리운전이니 걸릴 이유가 없다고 한다.

담배도 그렇다. 돈 많은 사람들은 피우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 스트레스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저 죽는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고 피우는 것이 담배다. 그걸 하루아침에 바짝 올려놓다니. 기름값도 그렇다. 기름값의 60% 이상이 세금이다. 기름값이 하늘높은 줄 모르고 상승할 때, 일본 국회는 과감히 반값이하로 대폭 내리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도용이라도 좋으니 따라했으면 좋으련만 발의해 보자는 의원조차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가난한 자를 돕지 않는다. 정직하고 선량한 소시민을 옹호하지 않는다. 젊은 청춘의 직장 구하기는 요원하고 중소기업은 도산 위기에 불안하며 불투명한 미래가 두려운 신혼부부는 출산을 포기한 지 오래다. 생각다 못해 손대 본 복권은 언제나 피해가고 부채 메시지만 뜨는 스마트폰이 두려운 세상.

그런 세상 살면서 언제 도덕 찾고 언제 인간의 존엄을따지며, 올곧고 사람답게 사느냐. 닥치는 대로 거짓을꾸며대고 되는대로 사기치고 도둑이 되어 하루를 살자는 것인가.

허나 같은 종, 같은 동류항끼리는 서로 잡아먹지 않는게 자연법칙이며 불문율일진데 인간이 그래도 되는 것인가. 그게 인간을 다루는 신의 섭리인가.

아내가 보이스피싱 과정을 설명하려고 한다. 갑자기 낙담한 여인이 보여 이야기를 급히 막았다. 들어봐야 나또한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인간은 절대 하나님을 욕하지 않는다. 언제나 있지도 않은 자기 잘못을 만들어 신을 옹호한다. 현대는 불만을 토로하고 원망할 대상조차 사라졌다. 우리는 혼자 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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