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자의 소혜(笑慧)칼럼]웃음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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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자의 소혜(笑慧)칼럼]웃음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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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3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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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자(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내 웃음노트의 첫 장에 붙여둔 하회탈(국보 121호)을 본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탈. 주름진 이마에 입 꼬리는 귀에 걸리듯 올라가 있고 콧구멍도 맘껏 벌려서 빵빵하고, 눈 꼬리는 약간 내려 아주 기분 좋게 웃는 모습이다. 나는 탈 그림을 볼 때마다 따라서 미소 짓는다.

내가 웃음 노트를 핸드백 속에 넣고 다니게 된지도 10여 년이 넘었다.

처음엔 그 해의 수첩에다 가족의 생일, 약속시간과 장소, 격언이나 표어,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적곤 했는데 어느 해부터 아예 노트를 만들어 웃음이 나는 글을 적기 시작했다.

웃음노트를 만들기 전에는 늘 안개 속을 걸으며 휘청거리듯 방황한 삶이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학도 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의기소침해지고 마음의 감기라고 부르는 우울증이 수시로 나를 짓눌렀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을 먹으면 눈은 빛을 잃고 비몽사몽간을 헤매었다. 만사에 흥미가 없고 무기력해지고 산다는 게 괴롭기만 했다. 그러다 한 순간 번갯불이 지나가듯 정신이 번쩍 들면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 하며 자신을 향해 강하게 도리질을 했다.

Why만 있고 How는 없단 말인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도 모자라는 삶인데 신바람 나게 사는 묘책은 없을까 하고 고민해 보았다. 그러다 ‘스트레스의 천적은 웃음’ 이란 말을 들었다. 그 때부터 나는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책을 읽다가도 웃음이 묻어나는 대목이 나오면 소리 내어 웃고 유머러스한 말은 공책에다 적기 시작했다. 나의 아둔한 머리로는 기억해 두기가 어려워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기억하며 적어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메모하는 습관을 길렀다. 다른 사람에게는 적자생존이 먼저겠지만, 나는 ‘생존하기 위해 적자’였다. 스트레스를 없애는 방법은 간단했다. 웃자. 억지로라도 웃자.

아주 신 식초를 마시고 찡그린 표정을 보거나 레몬을 잘라서 그냥 씹으며 고개를 흔드는 모습만 봐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처럼, 우리의 뇌는 억지로 웃어도 가짜인줄 모르고 진짜로 느끼며 웃을 때 나오는 엔도르핀이 마구 나온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잡는 웃음. 그 효과는 지대하다.

우선 웃으면 칼로리 소모가 많다. 노화방지, 진통제 효과, 면역력 향상, 체력 강화, 다이어트 효과, 천연 보톡스, 높았던 혈압도 낮춰준다고 한다.

웃음은 돈 들이지 않고 먹는 보약이다. 약을 잘못 먹으면 독이 되지만 파안대소나 박장대소는 효과가 매우 좋아 가슴속에 맺힌 미움과 한의 덩어리도 확 풀어주는 약이 된다.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새벽 일찍 일어나 대문을 활짝 열어두면 복이 온다 하여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라 했고,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 하여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현관문을 확 열어두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웃는 문이나 활짝 열어 복을 불러들이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한옥은 나무대문이라 나무빗장을 밀어야 문이 열린다. 새벽 다섯 시경 일어나 하루를 위한 1분 기도를 한 후 감촉이 좋은 나무대문의 빗장을 당겨서 문을 활짝 열고 쨍! 하고 깨질 것 같은 새벽공기를 맞이한다. 맑은 하늘 물에 정신을 헹구고 봉우리마다 녹색카펫을 깔아 놓은 숲을 바라본다. 푸른 산의 정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심호흡을 한 후 새벽길을 걷는다. ‘걸음아 날 살려라’ 오늘도 많이 웃자 하면서 신나게 걷는다. 소문만복래 먼저하고 개문만복래 하며 복을 불러들인다.

웃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개그나 코미디 프로는 꼭 시청하며 큰소리를 내어 따라 웃고 손뼉도 치면서 웃는다. 소화는 저절로 되고 기분도 좋아진다. 나의 위는 자주 말썽을 부려 위산과다증에 위경련도 일으켜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 웃음을 찾고부터는 약이 필요 없고 밥맛이 나고 건강도 좋아졌다. 웃음을 주는 사람-유머코치를 만나 강의도 듣고 유머 책을 수없이 사서 읽었다.

중국 금언에 ‘웃지 않는 사람은 장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생글생글 웃으며 파는 물건이 훨씬 더 잘 팔린다. 옛날 저녁을 굶긴 시어미마냥 찌푸린 인상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대인관계도 좋지 않고 되는 일도 없다. 전화를 받을 때도 웃으면서 받아야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웃으며 받는다는 걸 느낌으로 안다. 웃음은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즐겁게 해주는 전염성이 있다. 나도 남을 웃기려고 노력하고부터는 신명이 나고 모든 게 감사하며 이만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터넷 세상에 들어가 유머사이트를 탁 치면 줄줄이 사탕처럼 쏟아져 나오는 고소하고 맛있는 글들. 웃음의 소재를 찾아 남을 즐겁게 하려고 애 쓰는 사람들이 고맙다.

요즘은 웃음이 암을 치료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자 웃음치료사자격증을 따려고 애쓰는 사람이 늘어간다. 나도 K대학교에서 합숙을 하며 펀(Fun)리더십과정과 웃음치료과정을 교육받고 자격증을 땄다. 교육받는 내내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눈물이 나서 매일 손수건을 빨아야했다.

웃음노트. 그건 내 핸드백 속에 넣고 다니는 소지품이다.

모임이나 회식장소의 분위기가 어색하거나 침울해지면 나는 가방에서 웃음노트를 꺼내어 슬쩍 보고는 능청스럽게 말을 해서 웃긴다. 내 웃음보따리를 가득 채워 늘 웃음을 나눠주면서 살고 싶다.

웃음 노트 첫 장. 하회탈 그림 밑에 크게 써 놓은 글.

웃다가 복 받을래, 복 받아야 웃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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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민 2017-06-01 09:45:17
와 좋은 내용입니다. 당장 제인생에도 접목시켜야 겠네요,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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