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 칼럼]내 곁의 이색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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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내 곁의 이색 동반자
  • 중앙신문
  • 승인 2019.06.1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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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못 사는 게 죄는 아니라고 하지만 밑바닥까지 추락한 사람들을 보면 희망도 없는 절망속에 갇혀 사는 것 같고, 힘에 부친 삶을 죽지 못해 사는 것 같다.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실업자의 증가로 인해 서민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지자 설마 했던 시장 경제까지 무너져 내려서 고통스러운 국민경제의 악순환만 계속된다.

경제가 어렵자 조금이라도 절약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종전 같으면 길거리에 방치된 폐품들은 모두 다 쓰레기로 생각하고 외면하던 사람들이 버려진 폐품에 관심을 갖고 쓸만한 물건을 모아서 재활용하는 삶의 고된 현장을 연일 목격하게 된다.

그와 더불어 폐지와 고물을 모아 팔아서 생계를 겨우 잇는 빈곤층 사람들까지 부쩍 늘어나서, 쓰레기장이 마치 전쟁터의 고지 점령전 같은 각축전 처럼 비친다.

경제가 어렵자 쓰레기 처리 문제로 집집마다 골머리를 앓았던 폐지와 공병, 헌 옷과 폐가구가 분리수거를 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밖에 내놓기가 무섭게 어디론가 금방 사라져 버리는 기 현상이 발생한다.

더구나 이사철로 인해 주택가에 버려진 폐품이 많은 날은 독수리 떼와도 같이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해 흡사 아프리카의 사바나 풍경을 보는듯하여 씁쓸하기만 하다.

그만큼 살기가 어려워졌고 인심이 각박 해졌음이 피부에 와 닿는다. 총성은 없지만 전쟁처럼 치러지는 삶의 고통스러운 현장을 보면 사는 것 자체가 두렵고 겁이 난다.

버려진 쓰레기에 관심을 갖고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구구한 사연도 제각기 다르겠지만, 절약 차원에서 재활용품을 찾는 사람들과 아예 직업으로 삼고 화물차를 몰고 다니면서 폐지와 고철을 콩고물 빼먹듯 빼내가는 고물상을 보게 되고, 자기 몸하나 지탱하기가 힘이든 고령의 노인들과 장애인들이 손수레를 겨우겨우 끌고 다니면서 폐지를 수거하는 보기에도 측은하고 눈물 나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들이 쓰레기장을 찾는 이유는 한쪽은 지출을 줄이기 위한 알뜰살림의 일환이겠지만, 다른 반대쪽의 사람들은 오직 목구멍을 채우기 위한 필사의 생계 수단일 뿐이다.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 골목길에 버려진 물건 중에는 의외로 금방이라도 사용이 가능하고 정비만 잘하면 새것과 같은 폐품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외국 같은 경우 중고품 거래시장이 활성화 되어있어 물물교환과 시장 거래가 손쉽게 이루어지지만, 우리나라는 교환시장이 부족하고 국민 심리가 새것을 선호하는 바람에 이사 철만 되면 멀쩡한 가전제품과 가구들이 쓰레기로 변해 내팽개쳐진다.

얼마 전부터 내 차 안에는 염주 하나가 부적처럼 걸려서 동반자처럼 행세를 한다. 어찌 보면 샤먼이즘의 잔재와 종교적 신념이 외부로 표출된 것처럼 보이지만 주로 새 차를 사는 사람들이 차내에 염주와 십자가를 걸어두지 헌 차에다 문신 같은 표시를 하려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내가 염주를 차에 걸어놓게 된 동기는 이러했다. 어느 날 집 앞의 쓰레기장으로 쓰레기를 버리려 나갔더니 이삿짐 정리로 인해 버려진 가구와 집기가 산더미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버려진 물건들을 보니 그중에 몇몇 물건들은 속은 어떨는지 몰라도 겉모양은 새것과 비교하더라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갑자기 마음 한구석에 버려진 물건을 독차지하고 싶은 들개같은 욕심이 발동했다. 곧바로 쓰레기장으로 다가서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오륙 명의 사람들이 쓰레기로 변한 가구와 집기를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사용 가능한지를 확인하고 옮겨 놓느라고 부산했다. 나 역시 버려진 물건이 관심사였으나 선수를 빼앗긴 관계로 쏠렸던 관심을 접고 뒤돌아 서려는 찰나에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염주 하나를 발견했다.

염주를 본 순간, 순간적으로 놀랍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분신과 같은 염주를 버린 행위는 더 이상 신앙생활에 뜻이 없다는 표시였고, 신앙생활을 중단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주워든 염주의 상태를 보니 다년간 사용한 듯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했으나 보기 싫고 사용을 못해 버려질 단계에 이른 염주는 아니었다.

버려진 염주를 보자 왜 버렸을까? 하는 궁금증과 더불어 오죽하면 버렸을까 하는 동정론도 일었으나 이상스럽게도 마음 한편에서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고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염주는 득도를 향한 동반자 역할을 하며 백팔 개의 모감주나무 조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일반인들을 가리켜 중생이라 일컫고 중생들의 머릿속에는 백팔 개의 번뇌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번뇌를 깨우치기 위해서 승자들이 백팔 개로 만들어진 염주를 한 알 한 알 돌리면서 참선과 독경에 몰입하는 것이라고 설법을 한다.

쓰레기장에서 얼결에 주워 든 염주는 주인이 없어, 내가 대신 새로운 주인이 되었고 주인이 바뀐 염주는 딱히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궁리 끝에 승용차 안에 걸어두었다.

그리고는 염주와 무언의 동반관계가 시작되었다. 염주를 차 안에 걸어두고 매일같이 보고 또보는 반복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종교를 떠나서 전 소유자의 공력이 신기하게도 내 몸으로 옮겨지는 것 같았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로 인해 종교인들이 신앙생활에 빠져드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고 사이비 종교를 신봉하는 무리들의 희떱고 광적인 행동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다만 아쉬운 점은 신앙의 증표인 염주를 아무렇게나 버릴것이 아니라 책이나 의복처럼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기증하고 대물림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한동안 떨칠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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