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 칼럼]지킬 수 없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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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지킬 수 없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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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1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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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젊은 시절 나의 꿈은 나이 들어 직장에서 퇴직하면 아내를 동반한 세계여행이 작은 희망이요 꿈이었다. 내게 세계여행의 꿈을 달아준 것은 고인이 된 김참 삼 교수가 쓴 세계 여행기에서 기인된다.

중학생 시절이었다 친구가 보는 한 권의 책이 호기심을 당겼고 눈을 휘둥그레 만들었다.

친구가 보던 책은 생생한 칼라 사진과 더불어 배경 설명이 나열된 책으로서 60년대의 낙후된 제본 기술로서는 경이적이었고 특수 제작된 책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베스트셀러로 출판가를 뒤흔들었던 책이었건만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 당시 세계여행은 동서양의 냉전시대와 문화적 갈등 어려운 경제 사정이 겹쳐 그 누구도 생각조차 못하던 시대였다. 더구나 전쟁의 상흔을 입은 후진국으로서 외환 보유고는 밑바닥이요 철저한 외환 통 제로인 해 해외 여행객의 숫자는 제로 수준에 가까웠다. 후진국이라는 불명 예속에 갖혀 살던 암울한 시대에 김참 삼 교수는 신 지식인이 되어 세계의 하늘과 땅을누볐고 신비스러운 내용을 사진과 글로 표현하여 후인들을 깨우쳤으며 감명시켰다.

경제가 극히 어려웠던 시절에 세계여행이란 선진국 국민들만이 독점한 문명 생활이었고 후진국 국민들에게는 쳐다 보지도 못하고 올라 가지도 못할 나무였다.

당시 제물포 고등학교 지리학 선생으로 교편생활을 하면서 세계 각처의 문명에 관심이 높았던 김 교수는 세상을 내다보는 안목과 용기를 갖고 세계를 직접 찾아다니는 장도의 탐험길에 나선다. 그의 여행길은 집시와도 같았고 때로는 경비가 부족하여 아르바이트와 문전 걸식을 하며 5 대륙을 누빈 개척자의 고행이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를 찾아다니면서 또 다른 문화의 존재와 가치관을 소개해준 선구자의 카메라 속에는 유럽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과 남미의 정열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자유 분망 한 생활이 그대로 담겨서 독자들을 열망과 동경을 샘 쏟게 했다.

세월이 흘렀다 88 올림픽 이후 국가경제가 향상되어 통행금지와도 같았던 해외여행 규제가 풀렸고 전 국민의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이루어졌다. 때를 기다린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물밀듯이 해외로 쏟아져나갔다. 직장단위 해외연수부터 시작해서 계모임과 마을단위 관광여행도 주저하지 않고 해외를 선택했다. 경제발전에 자신감을 얻은 정부의 과감한 개방정책은 국민들의 해외여행을 부채질했고 국민들 역시 누적된 삶의 욕구를 관광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듯 해외를 찾아가는 관광객은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할 지경으로 초만원이 되다시피 되었다.

그러나 해외여행의 자유화는 견문을 통해 국민들의 정서와 욕구 분출에는 큰 도움이 되었으나 어렵게 번 돈을 해외에서 펑펑 써대다 IMF라는 된서리를 맞아야 했고 IMF를 극복하는데 국민들이 소지한 금붙이 패물을 팔아서 국가경제를 회복하는 큰 고충을 겪었다 그럼에도 한번 터진 해외여행의 봇물은 쉽게 수 그러 들지 않고 매년 연례행사처럼 이어져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해외여행 자유화는 나에게도 외국관광의 기회가 주어졌고 직장 근무 시 유럽의 몇 개국을 연수 목적으로 다녀 올 수가 있었다 먼저 셰익스피어의 대표적 소설 무대이었던 베네치아를 찾아 콘도라를 타고 환상과 같은 낭만을 즐겼는가 하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로마에서 로마의 웅장한 위용을 느껴보기도 했다. 또 정열의 나라 스페인에서는 마드리드 시민공원에서 세르반데스와 돈키호테 동상을 만났고 음악의 도시 비엔나와 짤츠부룩서는 음악의 천재로 불리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남긴 흔적에 흥분과 감격을 토하기도 했다.

그리고 설원의 나라 스위스에서는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의 전원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하기도 했다. 유럽여행을 다녀온이후 친목 단체를 통해 몇 차례 더 외국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내가 절실히 원했던 아내와의 둘이서 맞는 여행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질 않았다. 아내와 결혼한지도 어언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결혼초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그 흔한 신혼여행도 못 간 신세가 우리들 부부였고 후일을 기약하며 살다 보니 쪼들리는 생활에 해외여행 스케줄은 엄두도 못 낸 것이 우리 부부의 처지였다. 변명 같지만 지난시절 아내와 단둘이서 해외여행을 못 간 것은 노예 같은 직장생활과 경비가 만만치 않게 소요되는 그놈의 돈 때문이었다. 군대와 같이 엄격한 공직사회의 조직에서는 법령으로 허가된 관혼상제 외에 개인용무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고 쥐꼬리만 한 봉급에서 별도의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머리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상상도 못할 노릇이었다.

2004년 오랫동안 다녔던 직장생활을 마감했다. 정말 이제는 홀가분해져서 아내와 자유로운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고 둘만의 시간을 마냥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의 꿈은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상누각으로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얼마 되지 않은 퇴직금은 어려운 생활비에 충당해야 했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이리저리 시달리는 아내는 여유를 즐길만한 한가한 처지가 못되었다. 결국 결혼을 미끼로 아내에게 세계여행을 시켜 주겠노라고 큰소리 뻥뻥 쳤던 나의 헙헙한 약속은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막의 신기루로 허무하게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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