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지도자의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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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지도자의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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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0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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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 눈 내린 들판을 걸어 갈 제
不須胡亂行 불수호난행 -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하지 말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 오늘 내가 걸어 간 발자국은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 시는 서산대사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백범 김구선생께서도 서산대사의 시로 아시고 좌우명으로 애송하였다 한다.

서산대사의 글 모음집 청허당집(淸虛堂集)에 이 시가 실려 있지 않아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지은이가 순조 때 활동한 臨淵 李亮淵(1771 영조 47- 1853 철종4)선생으로 밝혀졌다.

다만, 踏자가 穿자로, 日자가 朝자로 되어 있고, 제목이 천설(穿雪)로 되어 있으나 의미는 같다고 한다.

이 글과 인연을 맺은 건 오래 전 장인어른께서 경구(警句)로 서예가의 글씨를 받아 표구를 해 주시고 부터다. 한문 실력이 일천한데다 더구나 행초(行草)글씨로 되어 읽지도 못하고 폼으로 걸어 두었었다.

나중에 붓글씨공부를 할 때 서예교실에서 배우니 어마어마한 내용이었다. 한 마디로 하면 자식이나 후진이 따라 배우니 언행을 조심하여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가.

50년 전 장교후보생으로 훈련을 받을 때 훈련부대 사단장이던 문중섭장군께서 지도자의 신념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하는데, 위의 시와 비슷한 내용으로 모범적인 장교가 되라고 격려하면서 ‘국가나 사회, 단체는 물론 모든 조직이 기초단위가 튼실해야 하고 여러분은 국가의 간성이며 지도자이니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신념을 성취하려면 강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같은 또래인 남(병사)을 가르치고 이끌어야 하는 초급장교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며 지도자의 길을 일깨워 주었다.

삶의 무게 때문에 힘이 들고 어려울 때 피해 가고 싶어도 그 때의 교훈이 생각나서 바른 길을 가고자 노력 하였다.

걸핏하면 국민을 들먹이고 나 아니면 당장 나라가 망할 것 같이 목소리를 높이는 지도자를 보면서, 결국은 들통 나고 마는 그들의 비리와 무능, 탐욕을 보면서 과연 그들은 어떠한 국가관과 신념으로 지도자의 길을 가는지 묻고 싶은 적이 많았다.

대학 은사였던 조지훈 선생의 강의 한토막이 기억난다. 지조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다. 선생은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을 강조한 것이다.

거름과 비와 햇볕이 고루 갖추어 져야 초목이 자라듯 사람도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큰다. 지도자가 잘 이끌고 가르쳐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정치엔 없는 장면이라면서 신문에 크게 실린 사진을 보았다. 미국대통령선거에서 패한 롬니 후보와 당선자인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악수하는 모습, 대통령이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도와 달라고 하자 흔쾌히 달려가 협조를 약속하며 포즈를 취한 두 거인. 자연스럽고 보기 좋았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자기개인의 영달을 위해 선거를 치르지만,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는 그들은 나라를 위해 선거를 치른다고 하면 너무나 편협한 생각일까.

지도자 중에 下는 재물과 주색을 밝히며, 中은 땅(영역, 세력)을 취하고, 上은 사람을 키운다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치던 우리들의 선대, 小利보다 大義를 바라던 강직한 사명감, 수 천 년을 두고 내려온 애국애민정신에 따라 큰 길을 가도록 소망해 본다.

남의 지도자가 된 사람, 되려는 사람은 책임, 긍지, 희생정신을 두루 갖추어 지도자의 신념으로 무장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올바르게 읽어 나라의 융성 발전에 기여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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