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새 봄의 새 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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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새 봄의 새 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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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1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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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오월’이는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강아지의 이름이다. 오월이가 우리 집으로 입양된 건 작년 7월초, 태어난 지 두 달 만이었으니 오월이는 2015년 5월생이고, 흰색옷을 입은 이쁜 여자 아이다. 먼저 주인 가족들이 무던히도 개를 사랑하고 보살핌이 보통 수준을 넘게 유별나-사료, 목욕, 운동, 개집 관리 등 등-강아지 분양 받았다가 흉이나 잡힐까 꺼렸는데 아내가 덜컥 승낙을 하고 데려 왔다. 강아지가 기거 할 집과 먹던 사료까지 동봉하였으니 할 말이 없었다. 머리를 맞대고 작명을 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고 “오월”이라고 지었단다.

오월이는 흰 털이 곱기도 하였거니와 얼굴생김이 진돗개 전형이어서 내 맘에도 들었다. 한 쪽 귀는 서고, 한쪽은 꺾어져서 쳐졌는데, 처남이 테이프로 며칠 감았더니 곧게 펴져서 균형이 잘 맞았다. 검은 눈은 해맑아 꼭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이 정겹고, 성격도 온순하여 보는 이 마다 칭찬 일색이다. 쫑끗 선 귀나 반짝이는 눈은 이 개가 영민 할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먼저 주인인 처남과 처조카 딸은 가끔 드나들며 오월이가 잘 있는지 탈은 없는지 감시를 하니 아내의 강아지 관리가 눈에 띄게 바쁘다. 점차 나도 오월이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침에는 밖으로 데리고 나가 대소변을 보도록 안내하는 개 당번을 맡았다.

오월이는 수시로 바뀌는 관리인들에 취하여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분간을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처남댁 가족들이 맛있는 간식거리를 공급하고 새 주인은 잠자리며 운동, 배변시간을 맞추어 활동하기 좋게 배려한다. 오월이는 꾀가 말짱하다. 처남부녀가 오면 우리 식구와 그들 모두에게 아양을 떨면서도 그들이 돌아 갈 때는 본체도 안하고 우리에게만 알랑거리며 충성을 다짐한다.

오월이는 애교가 보통 개보다 엄청나다. 아는 사람을 보면 발랑 자빠져 반가움의 표시를 한다. 배를 쓰다듬어 주고 머리를 두드려주면 일어서니 아무리 짐승이지만 보기에 민망하다. 양 발로 사람을 감고 바짝 붙어 빤히 사람을 올려다본다. 나는 질색을 하며 피하지만 점차 오월이의 애교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아내가 오월이에 관한 모든 일을 일임해 버렸기 때문이다. 오월이는 점점 건강하게 잘 자라 몸집이 불었다. 모르는 새 사춘기를 지나고 처녀가 다 된 것이다. 아침에 밖으로 나갈 때면 내가 끌려 다닐 만큼 힘도 세졌다. 다 큰 처녀가 어련히 알아서 하랴! 아침 배변시간에 풀어 놓고 기다리다가 돌아오면 묶어 두기로 하였다. 그러기를 며칠, 옆에 사는 일가 집에 비슷한 진돗개-물론 잡종이지만-가 있는데, 정말 아무도 모르는 새, 친해지고 연애를 하고, 임신을 하였다. 나야 문외한이어서 임신사실도 몰랐는데 처남식구들이 와서 일러 주었다. 배부르기와 젖꼭지 크기로 보아 4월초에 분만할 것 같다고 사료와 함께 영양식을 주라고 일러 준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3월초, 다음 달에나 찾아 오리라던 예상을 뒤엎고 오월이는 저를 닮은 흰색 일곱 마리 새끼를 낳았다. 급해진 아내는 개집에 포대기를 깔아주고 문을 가려주고 미역국을 끓인다. 다음 날 한 마리가 가엽게 돼 묻어준 후, 어미와 강아지 여섯 마리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밖에서 얻어오는 육류와 뼈다귀로는 모자라 생닭을 사다가 쌀로 죽을 쑤어 퍼주는데 식성이 좋아 주는 대로 먹어 치운다.

젖이 잘 나는지 강아지들이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눈을 감은 채 집안에서 옹기종기 부등 켜 안고 잠을 청한다. 눈도 못 뜨고 배도 땅에 닿아 걷지도 못하면서 어미의 젖을 빠는 귀여움, 생명력, 날이 가고 볕이 따사해 지니 강아지들도 눈에 띄게 자랐다. 어기적어기적 걸음마를 떼어 문밖으로 산보를 나온다. 우리 내외는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자연의 일부를 보며 느끼며 환한 미소로 강아지를 보살핀다. 어미의 자식관리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것, 핥고 쓰다듬으며 자식들을 보살핀다. 어느 날 보니 어미의 밥통에 새끼들이 모여 주둥이를 갖다 댄다. 벌써 젖을 뗄 때가 되었나 셈을 해 보는데, 어미가 으르렁거리며 새끼들을 쫒는다. 아직 밥 먹을 때가 멀었으니 엄마 밥 먹을 생각을 말라고 야단치는 것 같다. 이런 일은 자주 반복된다. 강아지가 커 간다는 반가운 메시지려니. 직접 개를 기르며 새끼를 받아보니 동물의 본성이 사람과 다를 바 없구나 절실히 깨닫는다. 아니 오히려 사람보다 낫다. 유치원에서 어린이집에서 아기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아기들을 학대한다고 한동안 세상이 떠들썩하더니 요즘은 자기 자식에게 몹쓸 짓을 하는 부모의 잘못이 매일 매스컴을 뒤덮는다. 개들도 친모 계모, 친부 계부에 따라 자식사랑이 달라질까. 아닐 것 같다. 오월이의 자식사랑을 보며 개만도 못한 군상들의 그림자. 인간성 회복의 어려움을 본다.

새 봄, 새로 찾아 온 새 식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생명의 오묘함, 자연의 질서, 엄마의 희생정신을 배우고 본능에 철저한 동물에게서 나 자신을 일깨우고자 한다. 우리 내외는 벌써부터 강아지 분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미가 들으면 큰 일 날 소리, 제 자식들을 저 모르게 다른 데로 보낸다는 걸 알면, 오월이는 어쩔 것인가.

남쪽에는 울긋불긋 꽃소식으로 봄을 열고, 부지런한 농부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하늘과 땅은 우리 집에도 하루하루 봄을 배달해 준다. 오월이의 가족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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