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섭의 목화솜 모정]봄을 가져다주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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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의 목화솜 모정]봄을 가져다주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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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01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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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삼월삼짇날이 벌써 지났는데 제비가 아직도 오지 않는다고 며칠째 아내는 조바심 한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늦게 왔으니 진득하게 기다리라고 한 마디 했다. 집 나간 강아지 기다리듯 하늘을 쳐다보기 며칠째 아내는 제비가 왔다고 소리친다.

두 마리가 빙빙 돌며 새살림 꾸릴 준비에 바쁘다. 작년에 왔던 제비들은 새 집을 짓지 않고 헌집을 수리하여 보금자리를 꾸미고 그냥저냥 살면서 새끼를 네 마리 낳아 기르고 떠났는데 이번에 온 제비는 새로 집을 짓기 시작한다.

‘ㄱ’자로 꺾인 추녀 안쪽에 집을 채 반도 못 지었을 때 어디서 다른 제비 두 마리가 나타났다. 마치 이산가족 상봉한 듯 네 마리가 하늘을 날며 유희하더니 짓다만 집을 놔둔 채 어디로 가 버렸다. 사나흘 열심히 논흙을 물어다 집을 짓더니 괴이하기도 하지, 네 마리가 어디로 가 버렸나. 더 좋은 데로 갔나 단체 여행이라도 갔나 친 인척 잔치에라도 갔나.

며칠 후 네 마리가 안마당 위를 힘차게 날더니 한 쌍은 짓던 집을 다시 짓기 시작하고 두 마리는 옛집을 들락거리다가 어디로 가 버렸다. 집을 완공하고 등기를 마쳤는지 두 마리는 새 살림을 시작하였다. 지금도 의문인 게, 두 마리는 누구이며 며칠 동안 어디로 쏘다닌 건지 물어 봐도 대답을 안 한다. 수 백 마리가 날아다니던 마을에 겨우 몇 마리가 둥지를 틀고 그렇게 제비는 봄의 한 자락을 안아왔다.

아침에 일어나 분합문을 여니 댓돌 옆에 민들레 두 송이가 피었다. 두 송이가 경쟁하듯 꽃을 피우고 포기를 키우더니 엄청 불어나 한 포기에서 가지치기를 하여 삼십여 송이 꽃을 피운다. 드물게 보는 민들레의 성장(盛裝)은 나의 눈길을 끌고도 남는다. 한쪽 포기가 꽃을 피우면 다른 쪽은 탁구공만한 털 송이를 하늘거리고 다음 날에는 역할을 바꾸어 꽃 피우기와 털 송이를 만들어 낸다. 안마당 화단, 바깥마당 곳곳에 씨를 뿌려 온통 민들레 밭을 만들어 놓았다.

민들레는 자신의 꽃이 유약한 것을 아는가 보다. 꽃은 화려하지만 힘이 없고 꽃대도 키만 컸지 자신을 지킬 능력이 없다. 색깔은 노랑과 흰색 두 가지여서 단조롭지만 달빛 같은 노란색 꽃은 은근함과, 백의민족을 닮은 흰색은 정갈함을 보여준다. 한없이 부드럽다. 그래서 민들레가 정이 가고 마음이 쏠린다. 둘러싸고 있는 이파리들은 제법 무장을 하고 자태를 뽐낸다. 중세 유럽의 군인들이 무장하는걸 보았는가 군인의 창칼을 닮아 끝이 뾰족하고 자못 위엄이 있다. 호가호위하는 여우의 꾀를 빌려 자신의 힘 있음을 과장한다.

몇 해 전 TV에서 민들레가 몸에 좋다고 방송을 한 후 서울사람 시골사람 몰려다니며 싹쓸이를 하며 씨를 말렸는데 주춤한 몇 년 사이 민들레는 연약한 몸매에도 생존과 번식력을 뽐내며 산야를 덮었다.

민들레 옆에는 언제부터 자리 잡았는지 질경이가 도열하듯이 뜰을 덮었다. 풀이 덜 나라고 강자갈을 깔아 몇 해는 재미를 보았는데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은 나의 의지를 시험하는지 종류도 다양하게 점점 자갈밭을 침범한다. 질경이는 고개를 반짝 쳐들고 씨앗을 만들고 있다. 그래도 민들레와 질경이는 나물과 차, 약재를 제공하고 봄을 가져오고 있으니 아내는 그들을 잡초로 분류하여 없애버리려는 나에게 힘주어 타박하고, 나는 참는다.

민들레가 자리 잡은 뜰, 오래전에 그곳에는 흰털이 복스러운 강아지가 있던 자리다. 강아지는 아침이 되어 분합문 열기를 기다렸다가 나를 보면 꼬리를 흔들고 고갯짓을 하며 아는 체를 했다. 하는 짓이 아기같이 귀엽고 앙증맞아 마음을 주었는데 어느 날 없어졌다. 트럭을 타고 다니는 나쁜 아저씨 철망에 갇혔다가 제 명을 채우지 못했으려니... 눈이 맑고 생기가 있어 아침을 기분 좋게 하던 녀석, 지금은 수컷인지 암컷인지 기억도 없지만 호기심이 강해서 이곳저곳 헤매며 영역을 넓히던 똥개 강아지는 건강한 봄의 기운을 가져왔고 봄의 향기를 날랐었다.

화단에 심은 소나무 세 그루는 경쟁하듯 잘 자라고 있다. 소나무와 느티나무는 못 생길수록 멋이 있다는 나의 지론대로 소나무의 모양새를 왜곡하기 위해 끈으로 가지를 엮어 얽어맨다. 눈물겨운 소나무의 생존경쟁은 주인 녀석의 욕심에 따라 이리저리 뒤틀리고 꺾이었고, 한 술 더 떠 팔 다리를 잘리는 가혹한 형벌을 감내해야했다. 아무런 죄와 잘못도 없이. 잔인한 인간의 심성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다.

욕심을 걷고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자연에 벌을 주어 그 벌이 내게 부메랑이 되지 않도록 자연을 사랑해야지.

봄은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봄을 가져다주는 삼라만상의 힘을 빌려논밭에서, 산에서, 들에서 이미 봄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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