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꿀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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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꿀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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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3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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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꿀농사를 시작한 지 벌써 십년이 넘었다.

처음 세 통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은 오십 통 가까이 된다. 그동안에 경험 부족으로 벌을 전멸시킨 일이 여러 번이다. 모든 농사가 다 어렵지만 벌은 수많은 생명이 함께 사는 것이라 다루는 데 더 많은 신경이 쓰인다. 경험과 시간이 쌓여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농사가 벌 키우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꿀벌은 팔만 년 전부터 식물에서 꿀을 얻고, 꽃가루받이를 도와 왔다고 한다. 그 긴 세월 잘 살아온 벌들이 요즘 갑자기 심해지는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날아 갈수록 기후가 이상해져서 그런지 밀원이 되는 나무의 꽃들도 이상하게 변해 가고 있어 벌 농가의 가슴을 태운다.

어느 해는 모든 꽃들이 향도 좋고 꿀도 많이 내놓아 풍년으로 꿀농사가 큰 보람이기도 하다. 또 어느 해는 아까시 꽃 필 무렵에 날씨가 춥고, 비가 많이 와서 양봉농가에 큰 타격을 주기도 하고, 아까시 꽃이 예년에 비해 송이의 크기가 반밖에 되지 않고 꿀 생성이 줄어들어 꿀이 나오지 않는 해도 있다. 꽃이 질 시기가 지나도 꽃잎이 떨어지지를 않고 그대로 나무에서 말라버리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자연이 하는 일은 모두 불가항력이니 그저 애만 태우면서 기후가 좋아 꿀농사가 잘 되기만 빌 뿐이다.

남쪽으로 아까시 꽃을 따라 이동했던 대봉가(벌을 200통 이상 키우는 양봉농가)들이 꿀을 많이 떴다고 하면 나까지 마음이 뿌듯하다. 반면 꿀은커녕 벌에게 먹이를 주어야 할 정도로 꿀구경도 못하고 올라왔다는 얘기를 들으면 내 일인 듯 가슴이 아프다. 중부지방에서 채밀을 하고, 휴전선 근방으로 아까시아 꽃을 따라 올라 가려던 사람도 그 지방을 답사하고 와서 북쪽으로 이동하는 비용도 나올 것 같지 않다고 포기하는 것도 보았다.

해마다 채밀하는 양이 기후에 따라서 다르고 향과 맛도, 나오는 양도 달라서 희비가 엇갈린다. 꿀 풍년으로 1년 내내 풍족한 꿀맛을 보기도 하고, 심한 흉작으로 생업으로 하는 양봉농가에서 목숨을 끊는 일도 생긴다. 꿀이 많이 나오는 해는 어떤 꽃에서든 꿀이 넘치고, 꿀이 나오지 않는 해는 어떤 꽃에서도 꿀이 없다. 기후가 조절하는 조화다.

수리시설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하늘만 바라보던 벼농사가 지금은 모심는 철이 되면 비가 오지 않아도 논마다 물이 넘실댄다. 전천후 농사의 승리다. 논에 가득찬 물을 보면 벌농사도 기후와 관계없이 지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부럽기까지 하다. 벌농사는 순전히 자연에 의지해서만 이루어지고 다른 방도가 없다. 장마철에 벼는 비를 맞으며 춤을 추지만, 벌은 비가 오면 집안에서 나오지도 못한다. 벌이 비를 맞으면 죽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자라는 벼와 물을 제일 무서워하는 벌, 같은 기후라도 작용하는 것이 이렇게 달라 벌농사는 신경도 많이 쓰이고 관리하기가 힘들다. 꿀 뜰 철이면 매일 하늘을 바라보고, 하루 종일 라디오의 일기예보를 듣는 것으로 그날 벌 일에 대해 점을 친다.

벼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잘 자란다는데, 생명이 있는 벌도 주인의 손이 많이 가야 한다. 주인의 눈이나 손길이 많이 가면 그 정성을 아는지 잘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미국에서 꿀을 따러 집을 나갔던 벌이 사라져 돌아오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가슴을 덜컹하게 만들더니 유럽까지 그 현상이 퍼져 가고 있다고 한다. 휴대폰의 전자파로 벌이 신경계통의 이상을 일으켜 집을 찾지 못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휴대폰의 영향이 곧 미치는 결과가 올 것이고 양봉농가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걱정이다.

농약 때문에 벌이 농약중독으로 많이 죽기도 하나 언제나 벌 농가는 가슴을 조여야 한다.

해마다 초봄, 벌일을 시작할 때마다 금년에는 기후가 잘 도와주어서 벌이 꿀이 많이 채취해 올 수 있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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