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벌꿀 뜨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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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벌꿀 뜨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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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0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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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봄을 맞아, 아까시꽃이 피고 향기가 진동하면 벌통에 모아진 꿀을 채취하기 위해 우리 집은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해진다.

벌에 쏘이지 않으려고 화학섬유로 된 옷을 두 겹씩 끼어 입고 머리에 망을 쓰고 단단히 중무장을 했는데도 벌통을 열자마자 벌이 어느 틈에 파고들어 얼굴과 목, 귀, 여러 군데를 쏘았다. 벌침이 들어가는 순간의 그 공포와 따가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벌에 쏘이면 가렵고 아픈 증상이 일주일도 더 간다. 얼굴에 독침을 놓았으니 퉁퉁 부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꿀을 뜨지 못할 뻔했다. 한 번 쏘고 나면 생명을 다 하는데도 꿀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끝까지 따라 다니면서 기어이 쏘고 죽음을 맞이한다. 벌통 앞에서 꿀이 가득 차 있는 벌집을 보면, 아까시나무에게 고마움이 인다. 자연이 만들어 낸 기분 좋은 향은 꿀을 뜨는 작업이 중노동인데도 힘든 줄을 모르게 한다.

십여 년 전, 처음 벌을 키우기 시작했을 때는 모든 것이 서툴러 시행착오를 많이 했다. 채밀기도 수동을 써서 꿀을 뜨고 나면 벌도 많이 죽고, 벌집에서 알도 많이 빠져나와 손실이 많았다. 꿀을 뜨려고 수천 마리가 붙어 있는 벌집을 두 손으로 들어 털어 내려면 두 팔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전동채밀기와 탈봉기(벌집에서 벌을 털어내는 기계) 등 일하기에 편리한 기구가 많이 나와 꿀을 뜨기가 한결 수월해졌고, 발의 손실도 극소화 되었다. 소규모의 벌농사라도 나이 들면서 힘에 부쳐 편리한 기계나 기구가 나오면 무리해서라도 구입을 하게 된다. 벌통을 열면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벌들을 잠재우기 위해 마른 쑥 연기를 뿜어야 한다. 꿀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기승을 부리던 벌들도 쑥 연기에 잠시 마비가 되어 모두 벌통 밑으로 내려가 숨을 죽인다.

벌통 안에서 기어 다니는 수벌을 눈에 띄는 대로 잡아낸다. 수벌은 암벌보다 몸통도, 유충도 크기 때문에 눈에 잘 들어와 없애기가 수월하다. 수벌은 삼사월 교미기가 끝나면 무위도식하면서 꿀만 축내므로 벌의 세계에서는 필요 없는 존재로 도태의 대상이다.

벌에도 레디훠스트가 적용되는지 깨끗한 새 소비(벌집)에는 암벌 알을 낳고, 오래되어 지저분해진 소비에는 수벌 알을 낳는다. 유모 벌들이 보살피기가 좋아서인지 암벌 알은 소비의 가운데에 낳고, 수벌 알은 가에 낳는다.

요즘 같은 꿀이 많이 나는 계절에는 분봉(새 여왕벌이 태어나면 한 무리의 벌이 반으로 갈라져 다른 보금자리를 만드는 현상)을 해서 개체수를 늘리느라 왕대(여왕벌이 될 알을 기르는 곳, 손가락 한마디만한 크기의 조롱박처럼 생긴 것)를 벌집 가에 조롱조롱 여러 개 달아 놓고 로열젤리를 먹이며 여왕벌을 키운다. 새 여왕벌이 나오면 구 여왕벌이 가족의 반을 데리고 집을 나가 다른 곳에 자리를 잡는다. 분봉을 해 나가면 양봉농가는 손해가 크므로 새 여왕벌이 나오지 못하도록 왕대도 모두 없애야 한다. 어쩌다 왕대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면 어김없이 분봉이 일어난다.

꿀을 내리는 동안에도 아기 벌들이 십여 마리씩이나 새로 태어나 벌집에서 돌아다닌다. 아직 날개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아기벌이라 가볍기도 하고, 세상구경을 처음 해서 두려워서 꼭 붙어 있어 그런지 채밀기가 돌아가도 떨어지지 않는다. 비틀비틀 제대로 걸음도 떼어놓지 못하는 것이 꼭 걸음마 배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기와 같아 안쓰럽다.

채밀기를 통해 흘러내리는 맑은 꿀이 통에 차는 것을 보면 자연의 오묘함과 신비함에 매료된다. 윤년에는 양봉농가들의 경험으로 꽃에서 꿀이 많이 생성이 되지 않아 꿀이 적게 나온다고 한다. 올해도 대봉가들은 꿀흉년으로 모두 시름에 잠겼다. 우리는 소규모라 그런지 다행히 별 지장이 없다. 고마운 일이다. 벌이 꿀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사람의 능력으로 어찌 그 섬세한 꽃에서 꿀을 채취할 수 있을까.

벌이 사람에게 내어주는 꿀과 프로폴리스, 로열젤리 등 벌에서 나오는 산물은 5프로 안팎이고, 식물수정을 통하여 인간의 생존에 기여 하는 것이 90프로가 넘는다고 한다. ‘세상에서 벌이 사라진다면 인간이 4년 만에 멸망할 것’이라는 아이슈타인의 말을 마음속에 다시 새기면서, 오늘도 한 마리라도 더 다치지 않도록 애쓰며, 최고의 꿀을 뜨기 위해 힘을 다 한다.

벌에 쏘여 고통스럽긴 해도 벌 한 마리 한 마리가 귀중한 보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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