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세종대왕님 전상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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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세종대왕님 전상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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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2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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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오랜만에 찬바람이 몰아치더니 혹독란 추위가 왔습니다. 먼저 대왕님께 올린 글월을 읽으셨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다시 올릴 말씀이 있어 아룁니다.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 국문학, 국어도 매우 어렵습니다. 한글이 과학적이고 글과 우리말이 같아 쉬운 듯 보이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웬만한 고학력자도 머리를 흔들고 맙니다. 학자들이 다듬고 간추려 학생이나 일반 국민들이 쉽게 배우고 익히도록 애쓰고 있지만, 가르치다- 가리키다. 다르다-틀리다. 등등 많은 단어와 문장에서 헷갈립니다. 또 말에 사투리가 있듯 글에도 사투리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시끄러운 도시의 간판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흐드러진 가을꽃과 은비늘이 반짝이는 강물이... 바람에 이지러지는 논밭을 끼고-. 아름다운 이 글귀는 어느 신문기자가 인터뷰하러 가는 길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문객들은 이렇게 남에게 돋보이는 미사여구도 써야하고 좋은 문장을 위해 머리를 짜냅니다. 우리글 우리말이 쓰기에 따라 남을 감동시키고 공감을 불러오기에 무척들 조심하고 있습니다.

1961년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던 해, 저는 대학 1학년이었습니다. 주말에는 산악부에 들어 등산 다니고 주중에는 새로운 친구, 고등학교 동창들 만나 떠들고 놀다가 큰일을 당하였습니다. 1학기말 시험에서 영어와 국어성적이 D학점(60-69)이하인 녀석들은 교육비를 따로 내고 방학기간 중에 보충수업을 시킨다는 방(榜)이 크게 붙었는데, 국어과목에 저도 당당히 이름이 올랐습니다. ‘국어쯤이야’ 우습게 치부한 것을 후회해도 소용없고 아버지 속이고 보충수업비 타낼 일도 아득하고... 이미 산악부에서는 설악산 등반이 계획되어 저도 동참한다고 들떠 있었는데... 그러다가 하늘이 도왔는지 소생할 길이 열렸습니다. 방학 중에 학생들 모이는 게 싫었던 계엄당국과 학교 측의 배려로 보충수업이 백지화되었지요. 이렇게 살아났습니다. 그 후 대왕님께 사죄도 할 겸 불량학생의 때를 벗고자 교양국어 책을 가까이 하여 2학기 시험에서는 A학점을 받았습니다. 좀 더 겸손하고 하는 일에 게으르면 안 되겠다는 걸 함께 배웠습니다. 그래도 한글과 국문법이 어려운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짓자면 띄어쓰기, 받침, 기호나 부호 채택이 무척 어렵습니다.

推敲(퇴고)라는 고사성어를 대왕님께서도 알고 계시지요.
閑居隣竝少(한거린병소) 인가 드문 곳에 한가한 집 있는데
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풀 무성한 길이 거친 정원으로 나 있네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새는 연못가나무에서 잠들고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스님은 달 아래서 문을 두드리네(하략)

당나라 가도(賈島 779-843)라는 시인이 시를 짓고 僧推(퇴)라고 할까 僧敲라고 할까 망설이다가 그 지역 시장인 한유(韓愈 768-824)의 행차를 방해하여 혼나게 되었는데, 사정을 이야기하니 한유 또한 저명한 시인인지라 敲라고 하는 게 좋겠다고 하여 ‘승고월하문’으로 고쳤답니다. 이에서 유래하여 지금도 우리는 글을 쓰고 고치고 다듬는 작업을 퇴고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글도 표현방법이 다양하고 감성이 풍부해서 한 글자 한 문장이 글 전체를 좌지우지하니 글쓰기의 어려움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기념하는 한글날은 <해례본>이 완성된 날을 근거로 하고 있으나, 이 학자는 <언해본>을 발표한 시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인데, 저희들은 상관없지만 대왕님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한자병용에 관해서도 어느 교육자는 한글과 漢字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라고 하면서 국운의 상승과 문화융성을 위해 혼용이 필요하다고 하였고, 어느 교수는 한자를 현대 국어의 일부로 여기는 것을 우려하면서 우리글이 다른 문자에 기대는 듯한 상황을 지양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또한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대왕님. 학교에서 한자교육이 사라지고 한자문맹이 늘어나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휘력과 독해력이 떨어지고 국어생활이 황폐화해가고 있습니다. 문장이해력을 측정해보니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꼴찌를 했답니다. 대왕님께 부끄러운 일이지요. 한자를 이용한 조어력(造語力)이 퇴화한 까닭입니다.

내 인생의 발여자(반려자), 에어컨 시래기(실외기), 장례희망(장래), 일치얼짱(일취월장) 등등(모 일간지 칼럼중) 어지러울 지경으로 우리말과 한글이 망가지고 어린 학생들 실력이 낙후돼 걱정스럽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은어, 비속어, 약어를 밥 먹듯 쓰고 있어 더욱 교육자와 우리들 기성세대, 학생스스로 반성이 필요합니다.

교육부가 2018년부터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되살리고 300-600자 정도를 가르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반대자들이 공청회도 못 열게 방해를 하였다고 합니다. 먼저도 말씀 드린바와 같이 저는 한자 혼용시대에 공부를 하였음인지 한글의 힘을 키우기 위해 한자를 가르치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믿습니다.

지금도 국문학자와 학계에서는 우리글, 우리말의 융성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백성들도 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문명국이 되었습니다. 이토록 좋은 세상 만드는데 첫 삽을 뜨신 대왕님께 엎드려 인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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