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설날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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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설날의 기억들
  • 중앙신문
  • 승인 2019.02.1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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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아버지의 아버지는 서른여섯 살 꽃다운 아내와 아홉 살 아들과 다섯 살 딸을 남기고 급서하셨다. 
나는 섣달 그믐날이면 아버지를 따라 집안 어른 몇 분과 할아버지의 친구 몇 분에게 묵은세배를 드리는 걸로 새해 설을 시작하였었다. 가끔, 할아버지 친구들은 할아버지와의 추억담, 에피소드를 곁들여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기리셨고, 아버지는 어른들께 드릴 풍년초나 파랑새 담배를 내게 들리시고 절을 한 후 한 갑 씩 밀어 놓으신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속으로 삼키셨다. 어른들은 헛기침을 하며 안에다 대고 다과상을 내 오라고 하시지만 겉치레 인사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우리는 얼른 물러나 나온다.

지금, 옛날 내 어릴 적의 설을 생각하니 아버지, 어머니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새해를 시작한다는 거창한 다짐이나 계획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옛날부터 내려오는 풍습이고 절차이니 따르는 것뿐이라는 걸. 지금 내가 그렇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설은 벌써 보름 전부터 시작되었다. 엿을 고으며 조청을 만들고 두부를 만들고 술을 빚고 떡판의 차례가 되면 흰떡을 만든다. 가끔 설빔을 짓거나 사오지만 빨래를 하고 다림질도 해야 한다.

사랑채 쇠죽 쑤는 큰 솥에 물을 가득 데워 나와 내 동생의 묵은 때를 씻어 주는 건 할머니의 몫이었다. 동네 아저씨는 잘 들지도 않는 이빨 빠진 바리캉 이발기로 내 머리털을 몇 올씩 뽑으며 빡빡머리를 만들었다. 여주읍에 나가 돈을 내고 이발을 하지 않으면 이 방법밖에 없으니 내 동생은 머리를 깎는 날, 머리카락이 뽑히는 아픔으로 뺨에 두 줄기 눈물 자국을 남겨야 했다.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잠을 못 자게 하지만 우리 집에선 안 통하는 전설이다. 여자라고는 어머니와 할머니뿐인데 눈썹에 밀가루 칠을 할 정도로 한가하지도 않거니와 아이들 놀랠까보아 그런 일을 벌이지 않으셨다.

그믐날 밤에는 복조리 장수가 그 집 형편에 맞게 복조리를 마당이나 뒤꼍에 휙 던지고 사라진다. 며칠 지나 복조리 값 받으러 오면 할머니나 어머니는 한 상 잘 차려 대접을 하였다. 복을 가져다주는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려니...

새로 사온 설빔 신발을 집어가는 일이 있었나보다. 신발도둑귀신이 설날 밤에 몰래 내려와 벗어 놓은 신을 신어보고 맞는 것을 골라 신고 간다고 해서 신을 감추었다. 귀신이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밤에는 체를 대문에 걸어둔다. 호기심이 많은 야광귀(신발도둑귀신)가 집안으로 들어오다가 체를 보고는 체 눈이 몇 개인지 세기 시작하는데 하도 촘촘하여 몇 번씩 다시 세다가 날이 밝아 되돌아간다는 재미있는 이야기, 좀 도둑에게 이만큼 대비하고 있으니 신발 집어 갈 마음을 먹지 말라는 경고이겠다.

설날이 되면 엄청 바빴다. 작은댁까지 네 집에서 차례를 지내는데 집집마다 음복을 하다 보니 한 시나 되어야 제사행사가 끝나고 성묘를 다녀오면 해질녘이 다 되었다. 아버지는 집안 어른은 물론이고, 누구누구 네는 꼭 세배를 드리라고 지정을 하시니 동네 아이들은 벌써 몰려서 놀고 있는데, 우리 형제는 이제서 동네 순방에 나선다. 세배를 받은 어른들이 다과를 내 주지만 마음이 뛰노는 아이들에게 가 있으니 서둘러 나온다. 어둑해서야 집에 오면 짜증을 부리고 투덜대느라 정작 가장 먼저 드려야 할 할머니 어머니께 세배 드리는 걸 빼 먹는다.

이제는 나에게 세배를 받을 어른도 안 계시고 또한 나에게 세배를 오는 이도 없으니 얼마 후면 그 흔하던 연하장 없어지듯 세배문화도 없어질까 두렵다.

요즘 설 준비는 할 게 없다. 모두 시장에서 사오고 전이나 부치고 만두를 빚는 정도이니 일도 아니다. 내 아내가 주관하고 막내 계수와 며느리 둘이 보조를 하니 힘들건 없지만 정성을 다 해야 한다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오늘의 명절이 오랜 시간을 두고 시대 흐름에 따라 형성되었듯이 오늘의 명절이 또 무슨 변화를 겪어 어떤 형태로 변해갈지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의 미풍양속이 잘 보전되고 유지되어 정신적 자양분이 되기를 바랄뿐이다.

설 무렵이면 먹을게 지천인데다 겨울이라 집안일 심부름도 별로 없어 아이들 천국이 된다. 연 날리기, 윷놀이, 자치기 등 놀이로 해를 넘기고 여자들은 널뛰기를 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큰 널빤지를 어떻게 구했을까 궁금하다. 날렵하게 솟아오르는 여인들의 널뛰기 솜씨는 경이로웠다.

모든 게 부족하고 어렵고 굶주리던 시절- 그 시절의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왜 그렇게 그리운지... 그 속에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과 숨결이 남아 있어서인가. 어려운 시절을 덧없이 보내고 이제 한 줌 흙으로 돌아간 조상들, 이웃들, 친지들의 문화를 지켜 오던 눈물겨운 열정과 노력이 안쓰러워서 인가.

설탕을 듬뿍 섞은 술지게미, 엿 지게미의 맛이며 다식, 약과, 부침개를 만들다가 모양을 슬쩍 망가뜨려 우리의 먹을거리로 주셨던 할머니의 사랑이 그립다. 추석날, 설날 깨끗한 옷 한 벌 못 입으시고 일만 하시던 할머니 어머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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