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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연기, 처음엔 도망가고 싶었다”
  • 오정훈 기자
  • 승인 2019.01.3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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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서형. /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제공

드라마 ‘SKY 캐슬’ 김서형
‘아내의 유혹’ 이후 10년 만에
제2의 전성기 “생각 못 했다”
“악녀 연기 답습할까 걱정”

‘올블랙’ 의상, 머리카락 한 올도 빠뜨리지 않고 올린 머리, 치켜 올라간 눈썹, 칼 같은 말투…. JTBC 인기 드라마 ‘SKY 캐슬’(‘스카이 캐슬’)에서 배우 김서형(46)이 연기한 입시 코디 김주영 선생은 단연 독보적이다. 눈에 띄는 비주얼적 요소들도 그렇지만, 극 중 ‘입시 코디’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그는 평온하던 캐슬 내 가정을 파국으로 몰아넣는 무게감 있는 역할을 맡았다. 정체와 과거를 꽁꽁 감춘 미스터리한 ‘김주영 선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SKY 캐슬’도 있을 수 있었다고 말할 정도다.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어머님,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등 유행어를 여럿 탄생시키며 ‘SKY 캐슬’의 악역 역할을 톡톡히 해낸 배우 김서형을 지난 29일 강남구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냉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김주영과 달리 김서형은 청바지에 흰 스니커즈, 풀어 내려뜨린 머리로 한결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는 이날 인터뷰 동안 울고 웃으며 지나간 현장의 기억을 떠올렸다.

“김주영의 대사는 일상적인 말투의 대사는 아니에요. 처음엔 대본 보고 ‘뭐지?’ 했어요. 이거 잘못하면 사극 같겠구나, 어떻게 표현하나 싶었어요. 그렇다고 현대극처럼 (대사를) 던지면 마냥 가벼워질 수도 있고요.” 고심 끝에 연기 톤보다 스타일을 먼저 결정했다. 그와 스타일리스트가 수차례 회의를 거친 끝에 지금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극 중 박수창(유성주)이 김주영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밤에 찍을 줄 알고 베이지색 목폴라를 입었는데 힘이 달려 보이더라고요. 나중엔 흰색도 빼고 ‘올블랙’으로만 갔어요. 사실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원단이에요. 한 주에 대본이 2∼3개 나오는데 그에 따라 피팅에만 4시간이 걸릴 정도로요. 감정선에 따라 가죽을 입을지, 새틴을 입을지, 실크를 입을지를 결정했어요.”

헤어스타일을 ‘올백’으로 넘길 때는 고통이 뒤따랐다. 짧은 머리에 조금씩 가발을 넣어 머리핀을 수도 없이 꽂아야 했고, 이 때문에 두통은 달고 살아야 했다. 김서형은 “극 초반에 머리가 너무 아파서 밀려오는 짜증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며 “몇 회 지날 동안은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SKY 캐슬’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충격적인 전개가 강점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김서형은 “한서진(염정아)에게 혜나(김보라)를 집으로 들이라고 한 뒤부터 ‘멘붕’이 왔다”고 털어놨다. “그다음 대본 내용을 모르니까, 앞으로 김주영이 무슨 행동을 할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감정이 안 올라오더라고요. 또 극 중에서 저는 사무실 안에만 있고 캐슬 사람들이 절 계속 찾아오는데, 이게 너무 비슷한 패턴처럼 느껴져서 제 연기가 지루해 보이면 어떡하나 걱정했어요. 감독님께 ‘아무것도 모르겠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얘기하면서 눈물이 찔끔 흘리기도 했죠.”

극 중 김주영과 늘 붙어 다니는 ‘조 선생’에 관해 얘기할 때 김서형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울먹거리다가 끝내 눈물을 흘렸다. “조 선생과 김주영은 너무 외로운 사람들끼리 잘 버텨줬어요. 19∼20회 찍을 때 와서야 둘이 웃으며 사진 하나 찍었죠. 그전까진 말도 잘 못 걸었어요. 나중에 현진(이현진)이랑 한 얘기는, 외로웠을 텐데 잘 지켜줘서 고맙다고요. 사실 극 중에서 둘 중 한명이 배신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결국 배신하지 않았죠. 19회 찍은 날은 저도 현진이도 감정이 많이 이입됐어요.”

김서형의 연기 인생에서 ‘악녀’ 캐릭터 비중은 작지 않다. ‘아내의 유혹’ 신애리, ‘샐러리맨 초한지’ 모가비, ‘기황후’ 황태후 등 유독 악독한 인물을 자주 연기했다. 그렇다고 악녀 연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김주영을 잘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도망가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SKY 캐슬’을 하면서 ‘신애리2’는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전 답습하는 게 싫어요. 처음에 보였던 게 또 보이는 걸 정말 싫어해요. ‘아내의 유혹’ 신애리가 지금의 절 있게 해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트라우마도 갖게 한 거죠. 그리고 배우 김서형이 가진 특징, 발성, 목소리가 있잖아요. 김서형의 습관이 묻어나와 김주영을 해낼 수 없을 것 같아서 도망가고 싶었어요. 이렇게 도망가고 싶은 건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우려와 다르게 그는 김주영을 훌륭하게 소화했고, 그 덕분에 ‘아내의 유혹’ 이후 10년 만에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10년 만에 전성기가 다시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는 그는 지금까지 연기한 ‘악녀’들 덕분에 김주영 선생도 탄생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퓨전 사극 ‘기황후’를 하면서 사극 같은 대사도 표현할 수 있었고, ‘샐러리맨 초한지’나 ‘굿와이프’에서 전문직을 연기해 본 덕분에 정장을 입었을 때의 제스처를 기억해낼 수 있었어요. 또 ‘아내의 유혹’에선 소리 지르는 연기만 지르면서 비주얼적 요소는 포기해버렸는데, 그 작품 이후부턴 보이는 면에서 캐릭터 포인트를 잡는 법을 알아낸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다 공부가 됐죠.”

다음 작품에서도 악녀 연기를 할 거냐는 질문에 “지금껏 맡았던 배역들은 센 역할이 아니라 불쌍한 캐릭터들이었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신애리도, 황태후도 다 불쌍했어요. 저는 김주영도 한이 많고 불쌍한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센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김주영 선생을 연기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왜 난 날 외롭게 만드는 불쌍한 역할만 할까’라는 생각은 하죠.”(웃음)

오정훈 기자  webmaster@joongang.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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