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전화·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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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전화·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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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2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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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전화국(KT)에서 내 휴대전화기로 메시지가 왔다.

몇 년 전 낡은 전화기를 새로 바꾸며 우리 내외가 2 만 원짜리 정액 요금제에 가입하였었다. 새 전화기는 그 값을 할부로 한 달에 약 8 천 원씩 납부하기로 약정하였는데 그 할부 기간이 끝났고, 새로 약정을 1년간 연장하면 25% 요금 할인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전화기 값을 다 갚았으니 요금 할인 혜택을 받으면 한 달에 전화요금을 13,000원 정도만 내면 된다고 한다. 3 만 원 가까이 전화요금을 내던 우리는 횡재라도 한 듯 입이 벌어졌다.

전화기의 다양한 기능을 제대로 이용하지도 못하면서 전화기만 들고 다녔는데 그나마 요금이라도 싸졌으니 다행이다. 우리 내외의 휴대전화비 6만 원 정도에 집 전화비가 4 만 원이 넘으니 살림규모로 보아 통신비가 적지 않다. 인터넷과 스카이라이프 요금이 문제인데 줄일 수도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이다.

그래도 이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외국에 나가 있는 아이들과 화상통화를 하면서 서로 얼굴을 볼 수 있고 전화기로 사진을 찍어 사진기로 보내니 나날이 진화하는 전화기 문명의 힘을 실감한다.

집 전화도 없이 살다가 간편하고 가벼운 전화기를 들고 다니며 시간, 장소에 구애 없이 통화를 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여주 강변 유원지 쪽에 여주시립 폰 박물관이 있다. 1876년 처음 발명된 물 전화기로부터 스마트폰 4세대까지 전시하면서 역사공부를 시키고 있다. 처음에는 점동면 쪽에다 어느 개인이 설립하였다가 여주 시에 기증하여 현재자리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세계 유일의 전화기 박물관이고, 나름 나에게도 전화기의 애환이 있어 큰 맘 먹고 가보니 시대별, 기기별, 보기 좋게 진열하고 여 직원이 안내를 하며 설명한다.

지금 전화기는 생활필수품이 되어 남녀노소, 심지어 유치원 다니는 꼬마나 80이 넘은 시골 할머니들 까지 한 대씩 모두 지니고 있으니 격세지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다. 전화가 귀하던 시절, 나도 전화를 놓고 싶어 3급 을류 재직증명서를 가지고 신당동에 있는 동대문 전화국에 가서 신청을 한 후 보름여를 기다려 어렵사리 한 대 배정을 받았다.

52국 8214번, 1972년도에 생애 처음 전화를 놓게 되어 받은 전화번호, 그러나 기쁨도 잠시, 내가 살고 있던 종로구 창신동 꼭대기에는 전화회선이 부족하여 가설이 안 된다는 통보를 받고 숭인동 쪽에서 가게를 하는 지인에게 빌려 주었다가 다음해에 내 집으로 끌어왔다. 고종황제께서 1896년 10월 2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화를 사용하신지 76 년 만에 서민 중에 서민인 나도 전화의 주인이 되었으나 별로 쓸 일도 없으면서 기분을 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고 부끄럽다. 몇 년 후 시골에도 한 동네에 한 대씩 나라에서 놓아주는 전화가 우리 집에 가설되어 가끔 안부 전화를 드렸는데 아이들과 통화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다이얼 전화기밖에 없던 시절, 미국 출장길에 뉴욕에서 버튼 식 벽걸이 전화기를 100불 주고 사 왔는데 남 보기에 건방지다는 말 들을까 두려워 다른 이에게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도 어렵던 전화 놓기는 1987년 전화 1천만 회선이 공급 되면서 숨통이 트였고, 1993년에 2천만 회선이 공급되면서 전화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고 한다.

신설동에 있던 시외 전화국 교환원을 통해서 시외 전화를 기다릴 때의 지루함, 낭패감은 장거리 자동전화 (DDD)로 해결이 되고, 신원조회를 거쳐야 지닐 수 있었던삐삐, 공중전화 부스 옆에서나 통화가 되던 시티폰의 불편함도 곧 사라졌으니 전화기의 진화를 위해 애쓴 과학자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려야 한다.

폰 박물관 우은경 씨의 설명에 따르면, 다른 지역과는 통화가 안 되고 한 구역 안에서만 통화가 가능하던 0세대, Car 폰이 1세대이고, 문자를 보낼 수 있던 2 세대, 사진 찍고 전송하던 게 3 세대, 요즘 쓰는 스마트 폰이 4 세대인데 평창 올림픽 때 5 세대 전화기가 등장 한다니 어떤 전화기가 우리를 놀라게 할까 기대가 된다. 10년 전 칠레 광산에서 침몰사건이 일어났을 때 지하의 광부와 지상의 가족이 통화하며 격려하고 사진을 주고받은 전화기가 삼성폰이라니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스마트 폰에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정보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왔다 갔다 하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게 될지 가름을 못하게 한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문명의 이기들, 과학자와 발명가들의 노력으로 점점 미지의 세계로 빠져드는 보통사람들의 삶, 편지를 없앤 전화기, 편리함을 주는 대신 인공지능이 전화기에도 파고들어 우리의 정신을 앗아갈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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