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섭의 목화솜 모정]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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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의 목화솜 모정]겨울
  • 중앙신문
  • 승인 2019.01.2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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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궁색한 삶을 살아온 그들에게 한 살을 더 먹이는 계절, 내년의 고단한 일거리에 대비해야하는 계절, 얇은 벽을 허물듯이 세차게 몰아 부치는 한풍에 온 몸이 오그라드는 계절. 초가지붕에 매달린 고드름, 주변은 온통 겨울 투성이다.
겨울 찬바람에 피하지도 못한 채 바람을 맞는 나목이며 희끗희끗 덮인 눈을 무겁게 이고 드러누운 논밭이 썰렁하고 햇볕을 쐬는 늙은 암소의 입김이 허옇게 서린다. 날지도 못하는 방패연을 날려 보자고 아이들은 뜀박질을 하고, 얼음 덮인 논에서는 볏짚으로 꼰 새끼줄로 공을 만들어 축구를 한다. 외롭게 서 있는 허수아비 외에는 관중도 없고 응원하는 이 하나 없는 축구경기지만 시골아이들은 등이 후줄근하게 젓도록 뛰어 다닌다. 문풍지를 할퀴며 그르렁거리던 바람이 잠시 잠든 사이 할머니의 팔베개를 베고 아이는 꿈나라로 간다. 우리들 어렸을 적 이야기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던가. 내일을 위해, 내년을 위해 지금 당장 굶주려도 종자를 보존한다는 말인데, 왜 그렇게도 처절하고 치열하게 들릴까. 딸린 식구들 입에 풀칠을 하려면 겨울에도 놀거나 쉴 새가 없다. 몸과 마음이 느슨해졌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겨울에도 농사일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겨울에도 할 일은 산더미다. 배움에 때가 있듯이 농사에도 때가 있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가면서 농촌에도 약간의 변화는 오고 있다. 같은 작물을 재배하는 이들이 동아리를 만들어 작목반을 조직하고 공부를 한다. 단위농협에서는 강사를 초빙하여 조합원들에게 신지식을 무료로 강의한다. 유명 농약회사들은 그들대로 농민을 모셔 놓고 토양 소독, 종자지식, 밑거름, 병해충 방제를 강의한다. 농사지식을 배우는 건 이곳저곳에서 얼마든지 공짜로 공부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비닐하우스도 이제는 격이 달라졌다. 모든 하우스가 그런 건 아니지만 전기와 컴퓨터로 모든 농사프로그램을 조작할 수 있어 큰 힘을 던다. 관수(물주기)와 태양(빛)조절, 환기, 온도조절이 손 하나 대지 않아도 저희들이 알아서 척척 해결한다.   축산농가도 새 시대를 살고 있다. 사료 주는 것, 급수, 착유는 이미 오래 전 기계화되었고, 가축 분뇨도 기계로 치운다.
 없어서 못 먹던 시절도 갔다. 이제는 더 맛있고 더 영양이 좋고 더 먹기 좋은 먹을거리를 찾는다.
 농부는 그런 추세를 받아드리고 준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작물의 담는 그릇, 표기, 무게, 크기 등등 소비자 취향에 맞추고자 공부를 한다. 가마니를 치고 새끼를 꼬던 시절도 갔다. 질 좋은 부대와 가볍고 다루기 좋은 끈이 지천이다. 그 시간에 잘 지어진 현대식 마을회관에서 점심식사를 함께하고 가벼운 오락으로 시간을 보낸다. 농사정보교환도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이웃들의 형편도 입방아에 올린다. 요즈음 간간히 귀농을 하는 이도 생기고 새로 영농을 꿈꾸는 이웃이 있어 함께 격려하고 걱정하고 준비에 힘을 보태 준다.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꾼들은 야생동물의 피해를 엄청 입었다. 고라니와 너구리, 멧돼지들이 고추 싹을 갉아먹고 땅콩, 콩밭을 뒤집어 놓고, 산새들은 여물어 가는 작물을 훑어갔다. 

야생동물들의 접근을 예방하는 방법이 백가쟁명인데, 땅콩농사를 크게 짓는 누가 경험담을 이야기 한다. 작은 약병에 크레졸을 담고 병뚜껑을 못으로 뚫어 구멍을 내어 밭 언저리에 띄엄띄엄 놓으면 후각이 발달한 동물이나 새가 크레졸 냄새가 싫어 얼씬도 안 한다는 것이다. 모두들 흥미 있게 들으며 내년 봄 고라니, 너구리 산새들의 피해에서 벗어 날 꿈에 부푼다.
 산간벽지까지 버스가 다니니 교통걱정 없이 읍내를 들락거리며 보건소에서 공짜로 진찰을 받고 의료보험으로 당뇨, 혈압, 감기약을 짓고, 보건소 치과에서 스켈링을 하며 건강을 챙긴다. 물질을 앞세우고 너도나도 이익을 추구하며 개인의 편리함만 좇는 도회지 사람들과는 달리 시골의 겨울은 정이 넘치고 묻어난다.
마을회관 체육실에서는 배불뚝이 동네 여인들이 러닝머신에 올라 비지땀을 흘리고 전동 안마기에 누워 병든 허리를 달랜다. 겨울에 일어나는 시골 풍경이다.
겨울에도 젊은이들은 바쁘다.
겨울은 잠든 것이 아니라 봄으로 가는 통로이다. 얼음, 숨도 못 쉬고 움직일 수도 없는 그 얼음 속에는 내년을 기약하는 씨앗들의 옹골찬 생명력, 어둡고 차가움을 견디는 초목의 자태가 의연하다. 그래서 겨울은 겨울대로 아름답다. 가을걷이의 기쁨도 잠시, 그들은 또 한 해의 힘겨운 노고를 짊어져야 한다. 농사꾼들은 숨 가삐 지내 온 시간을 정리하고 봄으로 가는 길을 열어간다. 얼어붙은 것 같은 겨울, 그 속에는 활활 타오르는 농민들의 열정이 숨 쉬고 있다.
農者天下之大本을 이끌어 가는 오늘의 농촌은 이렇게 활기차고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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