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사라지는 것들 - 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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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사라지는 것들 - 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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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1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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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중앙신문=중앙신문] 추운 겨울, 어린나이에 키에 맞지도 않는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가는 아이들은 홑바지, 뚫어진 양말, 떨어진 고무신으로 추위에 떨며 민둥산을 뒤진다. 해 질 녘이 되어 어둠이 스며들고 저녁연기가 마을을 덮을 때 아이들은 뒤뚱거리며 돌아온다. 나무가 흔하지 않고 산주인들이 나무도둑을 지키기 때문에 나무 한 짐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큰 고개를 넘고 먼 길을 돌아야 하니 큰 고생이었다.

보릿고개를 만들어 냈고, 그 고개를 힘겹게 넘었던 지게 세대, 우리들의 할아버지들, 아버지들의 아픔. 지게에 얹힌 고달픈 삶. 하소연 할 데 없는 막막함, 지금 우리는 그분들의 노고와 설움을 잊은 채 안일에 빠져 있다.

지게는 주인이 그러하듯이 일 년 내내 편히 쉴 틈이 없다.

이른 봄이 되면 농부들은 거름 내는 일부터 농사일을 해야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게 지게이다. 운반수단이 지게밖에 없던 시절 부녀자들은 머리에 이고 다녔지만 남자들은 곡물이나 나무, 다른 짐을 지게로 져 날라야 했다. 지게는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이다. 소를 앞세우고 지게에는 쟁기를 지고 담배를 물고 농부가 들일을 나갈 때, 지게를 짊어진 허리는 구부정하게 휘었고 걸음걸이는 바쁜데, 시커멓게 그을리고 영양실조로 누렇게 뜬 얼굴엔 주름이 깊다.

뚜벅뚜벅 걷는 발걸음에는 내일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고 풍년을 기원하는 소원이 스며있다. 가슴과 얼굴에 숨겨진 그늘, 하늘과 땅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게 농부의 운명이라 자연에 순응하며 묵묵히 갈 길을 간다.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건강하다.

6. 25 전쟁이 났을 때 우리 마을로 피난 온 가족이 있었다. 식솔은 많고 농토는 없어 먹고 살려니 품팔이를 하다가 여주 도기(陶器)공장에서 물건을 받아다 지게 등짐을 지고 팔러 다녔다. 시간을 아끼고 시장 끼를 참느라고 2십리 먼 길을 쉬지 않고 오갔다는 얘기를 어렸을 적에 들었다. 지게 덕분에 먹고 살고 땅을 사고 아이들 공부를 시켰으니 지게가 생명줄이었다.

지금처럼 운송수단이 발전했더라면 10분 거리를, 3시간이나 걸려 무거운 짐을 졌으니 옛 시절 우리의 선대들 고생이 짐작 된다.

그래도 지게는 조상들의 슬기가 담긴 생활도구이다. 지게가 없었으면 가끔 TV에서보는 아프리카 사람들 같이 끈을 이마에 메고 등에 지고 다녀야 할 것 아닌가.

3 천여 년 전 은나라에 달구지가 있었다는 고증, 4천여 년 전 두 바퀴, 네 바퀴 운반구가 있었다는 전설은 그 시절에도 이미 과학이 존재했다는 반증 아닌가. 소가 없으면 손수레나 리어카라도 만들어 쓰지 왜 지게만 고집했을까. 길이 좁아서 일까.

내가 어렸을 적, 동네 친척 댁에 우마차가 한 대 있었다. 5일장이 서면 품삯을 받고 여주 장까지 물건을 실어다 주었는데, 어떤 이는 품삯을 아끼느라고 지게에 물건을 지고 다니는 걸 보았다.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들던 시절 이야기다.

사내아이들은 열댓 살이 되면 일꾼으로 대접을 받았고 아버지들은 지게를 만들어 주었다. 전통적 농가에서 지게는 없어서는 안 될 운반 수단이었고 지게를 지고 다녀야 일꾼 구실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밥상머리에서 집안어른으로부터 가정교육을 배우고 지게를 지며 농사일을 익힌다.

가지가 달린 소나무 두 개를 위는 좁고 아래는 넓게 벌려 그 사이에 3-4개 세장( 가로막대)를 끼우고 탕개(질기게 꼰 끈)로 조여서 A자 모양의 지게를 얽고 짚을 꼬아 어깨끈과 등받이를 달고, 짐을 묶을 끈-청올치로 만들었다-을 달고 작대기를 만들면 작업 완료다.

이지게는 평생을 두고 따라다닌다. 군대를 가고 장가를 들고, 아이를 낳고, 늙어 가도 등에서 벗어 날 줄을 모른다.

이렇듯 질기게 우리의 등을 휘게 만들던 지게도 이제는 민속품 취급을 받고 구경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경제발전이 되면서 농지정리가 되고 농경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농기계, 농기구가 개발되었고, 지게 자리를 경운기, 트랙터, 트럭이 대신하니 5천년 동안 5천만을 먹여 살리던 지제는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꾸불꾸불하던 논두렁을 바로 펴고 논을 네모반듯하게 만들었다. 나라의 힘이 커졌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지게를 지고 다니지 않으면 볏단을 나를 수 없던 논바닥에 콤바인이 들어가 타작과 볏짚정리를 한꺼번에 하는 시절이 되었다. 농부의 노동력이 크게 줄어 농촌에서도 건강관리와 여가생활을 즐기고 있으니 상전벽해 저리 가라다.

피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식량해결이 어렵던 시절, 우리들 부모는 굶주리고 헐벗어도 자식들을 위해 모든 걸 바쳐 희생하였다.

지게꾼이나 면해 준다고 얼마 되지 않는 전답을 팔아 자식을 대처로 유학 보냈다. 농토를 팔아버렸으니 소작인으로 전락하고 자식의 입신양명을 학수고대한다.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어버이의 뜻에 보답하려고 애를 쓰지만 학업도 취업도 어렵다.

다시 어버이에게 손을 벌리는 자식을 들판으로 데려간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랑이를 벌리고 거꾸로 엎드려 먼 곳을 보라고 이른다. 바로서서 볼 때와는 별다른 천지가 펼쳐진다. 아버지는 세상사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다. 세상을 사는 선조들의 법도이며 생활의 슬기다.

지게는 농촌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시골에서 이것저것 해봐야 호구지책도 안 되니 식솔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 왔다. 기술도 없고 자본도 없고 배움이 없으니 쉬운게 지게질 이었다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버스터미널에서 짐을 실어 날랐다.

어느 때인지 시골에서 쌀 한가마를 버스에 싣고 상경하였다. 택시에는 안 실어주어 지게꾼을 불러 짐을 지게하고 동마장 터미널에서 약수동 집까지 오는데 짐 값을 5백 원 지불한 기억이 난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나와 비슷하게 노년을 보낼 그 분들, 자식들 덕분에 여유있는 살림을 살았으면... 시장 통 좁은 골목 양복지, 피륙, 갓 생산한 아동복을 지고 오르내리던 우리 또래, 시장을 접으면 그게 퇴근 시간이고 퇴근하면서 독한 소주 한 사발에 거나해져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우리 또래, 이제는 지게를 지고 싶어도 기계가 대신하고 힘이 부쳐 처다만 볼 옛날 지게꾼.
우리 곁에서 없어지고 사라지는 게 어디 지게뿐이겠는가. 빤한 지게 이야기를 넋두리처럼 늘어놓는 것은 마음의 고향이었던 농사의 고마움을 잊고 농사일을 가볍게 여기는 세태가 되어 서럽기 때문이다.

그나마 귀농 인구가 늘어 농촌에 활기가 돌 것 같으니, 오는 손님 반갑게 맞아 정신적 모태였던 농촌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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