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삶의 중심을 잡아주는‘인문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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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삶의 중심을 잡아주는‘인문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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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1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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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마장도서관팀장)

| 중앙신문=중앙신문 | 도서관쟁이로 살아온 지 21년째다.

책이 좋아서, 책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데에 도서관 아닌 다른 선택지는 나에게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도서관 사서의 첫 번째 자질은 ‘책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느낀 사서의 기본은 책보다 사람을 더 좋아해야 하는 것이었다. 사서는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나 역시 사서로서 바라고 다짐한다. 책과 더불어 ‘사람’을 읽을 것을, 도서관 안에서 내가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칠 것을, 나 자신보다 시민의 성장을 위해 고군분투할 것을.

2018년 5월, 이천시 최초의 사서직 팀장이 되었다. 최초라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며 쉬지 않고 달려왔다. 내가 상상하던 도서관을 현실로 만들어보겠다는 희망과 의지를 담아 많은 고민과 연구를 거듭했다. ‘도서관이 지역 주민들로부터 외면받지 않기 위해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할까’, ‘도서관만이 가 가진 잠재력은 무엇일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했다. 답은 ‘사람’이었다. 그 후로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삶의 기준을 만들어 주고 폭넓은 사유를 가능케 하는‘인문학’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우리 도서관 ‘당신에게 권하는 인문학’사업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선향 영향력을 끼치는 작가들을 모시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과연 작은 시골 마을의 공공 도서관에 사람이 모일까?’라는 걱정도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나 1회 차 강연회에서부터 나의 걱정은 기우였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강의실을 빈틈없이 꽉 채운 청중에 부응하듯 불꽃같은 열정으로 강연하는 강사, 진지하게 강의를 듣고 수준 높은 질문을 쏟아내던 시민들, 이어지는 강연자의 진심 어린 답변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는 엄청났다. 마침내 마장 도서관 ‘당신에게 권하는 인문학’사업은 큰 성과를 이루어 냈다.

인문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편향된 시선을 바로잡아 주고, 당연한 듯 길들여져 있는 사상으로부터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때로 각자의 선한 본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제대로 된 인문학 강연회의 부재가 시민들을 이토록 목마르게 했고 그 목마름이 늦은 저녁 시간, 비가 쏟아지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으로 달려오게 만들었던 것이다. 뿌듯함과 동시에 도서관인으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의 무게는 더욱 커졌다.

‘1회 강연이 1천만 원이라는 스타 강사의 강연을 듣고 손뼉을 치면 인문학적 감성이 살아날까?’(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출판 평론가 한기호)라는 주제의 칼럼을 본 적이 있다. 공공 도서관에 1천만 원 이상의 몸값을 자랑하는 유명한 예능 인문학자들을 모실 수는 없다. 예산의 한계와 효율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고려했을 때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선한 영향력을 가진 작가들과 진정성 있는 이야기로 진심을 담아 소통하는 것이 바로 ‘도서관이 추구하는 인문학’이다.

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고 (마장 도서관 인문학 특강의 묘미는 ‘질의응답 시간’이다. 가족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를 하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시는 분도 있었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전 인문 읽기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해야겠다고 말씀하시는 현직 교사도 계셨다), 적극 지지해 주면서, 시민이 자발적 학습동아리를 만들어 도서관과 연대할 수 있게 문을 활짝 열어 주는 것이 도서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도서관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 경제적 가치와 기준으로 평가되거나 비교되지 않고, 공공성과 공익성이 훼손되지 않으며, 공공 도서관이 가진 사회적 책무가 약화되지 않도록 도서관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다 같이 노력해 주기를 희망한다. 도서관의 미래는, 도서관의 주인인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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