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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바람아 멈추어 다오
  • 중앙신문
  • 승인 2019.01.1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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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12월에 올 줄 알았던 눈이 절기상 소설을 아는지 새벽부터 첫눈이 내린다. 창가에서 눈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눈 쌓인 산과들이 보고 싶어졌고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꼭 한번 산에 올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산에 오른 지도 꽤 오래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산은 내게 정례적 등산코스였고 체력 단련장이었으며 심신을 맑게 해주는 수목원이 되기도 했다. 직장을 퇴직한 후에 나태해져서 산을 멀리한 결과 산은 점점 내게서 멀어졌고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첫눈 치고는 제법 많은 적설량을 보이던 눈이 오후가 되자 그쳤다.

집 주변의 제설작업을 마친 후 생각난 김에 나는 눈 덮인 도시의 설경을 보기 위해서 뒷산으로 향했다. 산에 가면 어쩐지 반가움이 부풀어질 것 같고 아쉬움이 절로 느껴질만 같은 생각에 발길을 재촉하자 늘 반겨주고 등산로처럼 오르기 좋게 만들어져있던 오솔길이 내린 눈으로 인해 잘 보이질 않는다.

길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언제나 길을 이용하는 생활 속에 빠져든다. 사람이 다니는 큰길은 차도와 보도로 조성되고 도시를 떠나서 작은 길로 지칭되는 길들은 논밭을 관리하는 농로와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로로 구분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길을 자동차로 달리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생활 속의 즐거움을 나름대로 키워 나간다. 내린 눈으로 인해 한동안 오솔길을 찾지 못하다가 겨우 오솔길의 흔적을 발견하여 산에 오르게 되자 기쁨보다는 길하나 찾지 못하는 아둔함과 그동안 산을 찾지 않아서 생긴 일인 것 같아 후회가 되고 낯이 뜨거워진다.

미끄러운 오솔길을 조심스럽게 내디디며 산에 오르자 산속의 나무들은 하나같이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옷맵시를 자랑하고, 눈을 흠뻑 뒤집어쓴 숲속은 몸에 묻은 눈을 털어내려는 듯 이따금 툭툭 소리를 내어 말초신경을 곤두세우게 한다.

고요한 산속에서 눈을 밟으며 혼자 걷는 즐거움은 뭐니 뭐니 해도 세속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기쁨과 아울러 방전된 기력이 재충전되어 삶의 보람을 되찾는 것 같아진다. 작은 산에 오르자 눈앞의 풍경은 봄과 여름에 본 것과는 달리 전혀 딴판으로 나를 대한다. 산 아래 보이는 도시의 건물들은 화장을 지운 민낯을 보여주고 개미들의 행진처럼 줄을 서서 이동하는 차량들의 모습은 꼭 어린아이들의 장난감 같아서 사뭇 귀엽게만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니 큰 산은 세월의 풍상을 다 겪은 바위처럼 과묵한 모습으로 다가왔다가 말없이 돌아선다. 또 설원의 들녘은 오염된 세상을 하얀 눈으로 정화하여 자연의 위대함을 거듭 알려준다.

작은 벤치에 앉아 잠시 생각에 젖자 바람이 다가왔다. 그러나 바람은 내가 생각했던 바람이 아니었다. 윙윙 소리를 내며 추위를 몰고 와서 몸을 움츠리게 했고 옷깃을 세우게 했다. 사계절 내 주위에서 맴돌던 바람은 봄에는 훈풍을 솔솔 불어와 꽃을 피우게 하였고, 벌에 나비를 불러들였으며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안겨 구슬땀을 씻겨 주었는가 하면 가을에는 나뭇잎을 살랑살랑 흔들며 붉은 단풍을 만들어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꿈같은 낭만에 젖게 하였다.

그런 바람이 겨울이 되자 폭군으로 변하여 횡포를 일삼는다. 덜컹덜컹 창문을 흔들어대고 가지런히 정리된 작은 물건들을 휙휙 날려버리는 행패를 서슴없이 부리는가 하면 차디찬 한파를 몰아쳐서 산속의 나무들을 벌벌 떨게 한다. 또 사람의 생활 속에까지 파고들어와 피해를 준다. 거리의 노숙자들을 강추위로 떨게 하고 폐지를 주워 모아 생계를 겨우 연명하는 영세민들의 수거활동을 방해하여 삶의 고통을 더욱 안겨준다.

사람들은 겨울을 좋아하면서도 한사코 겨울바람만은 싫어한다. 그것은 사나운 겨울바람이 강물을 꽁꽁 얼리고 산과 들의 모습을 바꿔놓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사람의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고 생업에 큰 지장을 주고 있기 때문인 것이 분명하다.

예부터 가난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세상에 퍼진 말로서 겨울보다는 그래도 여름이 더 낫다는 말을 듣는다. 여름은 산과 강을 이용해 누구나 더위를 피할 수 있지만 돈이 많이 필요한 겨울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대책 없는 월동 생활뿐이고 비련의 계절에 불과하다.

공허한 산중에서 묵언을 통해 삶의 진리를 어설프게 깨닫는 순간 저편에서 바람이 일진광풍을 불어대며 내게로 달려들었다. 갑자기 각 을 세우며 달려든 바람의 기세에 나는 그저 속수무책이 되어 성난 바람이 제발 멈춰주기를 바라면서 황급히 산을 내려오기에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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