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에세이]은총
상태바
[이상국 에세이]은총
  • 중앙신문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01.09 13: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내 수필 두어 편 읽고 “무조건 책 내라. 출판비는 내가 댄다”고 한 사람이 있다. “왜 내 책 내는 데 당신이 돈을 대”하고 따지니 “문화보존 발전을 위해서.” 그 때, 그 말을 나는 순수하게 듣지 못했다.

부동산 관계로 세무사와 점심을 같이 했다. 점심상에서까지 세금을 따지고 싶지 않아 일상적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교회 이야기로 번졌다.

그의 종교관을 듣는다.

어려서 차임벨 소리에 끌려 교회에 갔고, 어린이 성경학교를 다니다 심취하지만, 부모님 반대로 교회를 끊었다. 그러나 호락호락 끊기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다시 다녔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독대(獨對)였다. 각각의 책과 장과 절이 연결되고 뒤섞여 필연의 고리를 만든다. 보르헤스가 찾고 인류가 추구하던 완전한 책을 이 사람이 이야기 하고 있다.

보르헤스의 ‘모래의 책’ - 책의 마지막 쪽을 열고 다음 장을 열면 또 다른 마지막 장이 나오고, 다시 마지막 장을 넘기면 또 새로운 마지막 장이 나온다. 그리고 첫 장을 찾아 펼치고 다시 앞장을 열면 다시 첫 페이지가 나온다. 하염없이 이어지는 첫 쪽과 마지막 쪽이 쉴새없이 새로운 내용, 새로운 쪽으로 펼쳐지는 책.

그리고 보르헤스의 또 다른 책 -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 나오는 마지막 페이지와 첫 페이지가 동일해 영원히 순환하는 원형의 책. 지구상의 모든 지역이 망라되고 우주공간과 전 인류가 내포 된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사람과 앞으로 태어날 인간들이 빠짐없이 수록된 완벽한 책. 적어도 나는 그런 책을 떠올리며 듣는다. 따라서 이야기는 방대하고 영원히 순환하는 전설로 들린다.

최초의 인간을 이브가 아닌 아담으로 만든 필연과 예수그리스도가 왜 성령으로 잉태해야만 하는지의 당위성.

세무사 시험 공부하는 동안 낙방이라는 벼랑 끝에서는 절박감이 엄습해 왔다. 성경을 읽었다. 읽기 싫은 부분도 있었다. 레위기와 같은 제사의 절차라든가 이스라엘 민족의 족보가 왜 필요한가. 돌아보면 내 인내를 시험한 것만 같다. 완독. 어느 부분, 작은 구절 하나를 건너뛰었다면 완독이 아니다. 마라톤 독서에서 완독을 비켜간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선악과와 에덴에서의 추방, 원죄를 이야기한다.

나는 밥을 먹는다. 듣고, 또 먹는다. 들으면서 먹는다.

탕에 밥을 말아 절반을 먹도록 말씀은 끊일 줄 모른다. 이 밥은 언제 먹으려고 이야기의 끝을 보이지 않는 것일까. 30분 후 ○○시인을 만나야 하는데.

이야기는 출애굽기로 넘어 간다. 이스라엘 민족을 모세가 이끌고 하나님이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일용할 양식을 주었지만, 작은 불편에도 이집트의 안락을 탐하고 모세를 욕하고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이 답답했고 이해할 수 없는 민족이라고 욕했다.

이제 먹기 시작했다. 밥 한 숟갈, 탕 한 숟갈, 또 한 숟갈씩. 밥 그릇 반이 비워졌다. 그런데 탕에 말은 내 밥은 줄어들 줄을 모른다.

“그런데 그게 아닌데요,” 목소리 심각하다. “모세와 하나님의 안목에서 보던 눈에, 이제는 내가 이스라엘 백성으로 보이는 겁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저주하던 내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인 것입니다.”

이쯤에서 나는 터키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파묵의 ‘하얀 성’을 읽는다. 터키인 호자와 이탈리아인 노예(전쟁 포로)는 생김새가 꼭 같았었다. 두 사람은 같이 생활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를 가르쳐 주고 서로 배워 생김새뿐 아니라 말하기, 듣기, 생활습관, 문화적 기호 모두 닮아 버렸다. 급기야 호자는 이탈리아로 들어가 노예가 되고 노예는 터키의 호자로 변하는, 뫼비우스의 고리를 연상시키는 소설이다. 따라서 그는 악마를 말하지만 천사를 이야기하고, 세상 종말을 이야기 하지만 인류의 희망을 논하고 있다.

요즘 오전에 구약, 오후에 신약을 읽어요. 이야기가 끝나가고 있다. 그는 식사를 마쳤다. 오히려 듣고 먹기만 한 내가 끝나지 않았다. 탕으로 말아 놓은 밥그릇이 비워지려면 아직 멀었다.

몇 년째 교회를 다녀도 성경 한 번 독파하지 못한 나. 권사의 남편이며 언제나 삐딱한 집사로서의 나. 나는 한참 멀었다.

내게 책 내라 독촉한 사람이 그다. 그의 순수를 액면대로 읽지 못한 내가 하염없이 추락하기 시작한다.

창밖에 은총의 첫눈 펄펄 내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단독] 3년차 의정부시청 여성 공무원 숨진 채 발견
  • 박정 후보 유세장에 배우 유동근氏 지원...‘몰빵’으로 꼭 3선에 당선시켜 달라 ‘간청’
  • 감사원 감사 유보, 3년 만에 김포한강시네폴리스 산단 공급
  • 1호선 의왕~당정역 선로에 80대 남성 무단진입…숨져
  • [오늘의 날씨] 경기·인천(25일, 월)...흐리다가 오후부터 '비'
  • [오늘의 날씨] 경기·인천(22일, 금)...오후부터 곳곳에 '비' 소식, 강풍 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