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섭의 목화솜 모정]곶감 깎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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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의 목화솜 모정]곶감 깎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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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0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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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잎을 떨군 감나무가 주렁주렁 달고 있는 황금색 감을 보고 있으면 그 화려함, 황홀함에 압도당한다. 어느 시인 화가도 표현할 수 없는 색깔, 멋은 과수중의 일품이다. 그 뿐인가. 형태가 바뀌며 연시, 홍시, 곶감이 되고 그들이 빚어내는 맛은 세계적인 요리사도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감나무는 들깨 짚 태우는 연기를 배경으로 마침맞게 익어가는 단풍과 함께 동양화를 연출한다.

아쉽게도 우리 마을은 감이 잘 안 된다. 어머니는 이웃 마을에서 감을 사다가 항아리에 넣어 연시를 만들어 겨울에 우리에게 간식으로 주셨다. 맛을 음미하며 아껴 먹느라고 동생들과 눈치싸움도 하였다.

우리 집안은 시월이 되면 보름부터 나흘간 시제를 모셨다. 어릴 적, 용케 일요일이 걸리면 아침부터 아이들은 들떠서 시제 끝나기를 기다렸다. 배, 사과, 밤, 대추, 떡과 함께 감도 한 조각 들어 있는 몫을 받아든다. 떫은 감도 껍질까지 먹어 치운다. 시제는 동네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잔칫날이었다. 시제도 어머니 표 연시도 이제는 내가 주관하고 내가 만들어 손자에게 줄 나이가 되었으니 어릴 적 추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어느 해인가 친구에게서 감나무 묘목을 얻어다 심었는데 얼어 죽고 새로 싹이 나고를 거듭하더니 탐스런 감을 몇 백 개나 주었다. 감지덕지하며 연시를 만들어 냉동고에 넣고 곶감을 만들고 난 생 처음으로 풍성하게 감을 즐겼다. 그러나 웬일, 그 해 겨울 감나무는 얼어 죽고 말았다.

몇 해 전부터 곶감을 만들려고 10월 말쯤이면 상주에 간다. 올 해도 다녀왔다. 상주 농협 공판장엘 가면 무더기로 쌓인 감 더미에서 가격 따라 고른다. 이미 단골이 된 중간도매상에게 부탁하여 좋은 것을 점찍는다. 20kg 한 상자에 대략 90개 안팎으로 담기는데 3 만 원 정도다. 올 해는 곶감용으로 두 상자와 대봉 감을 연시용으로 한 상자 샀다. 단풍으로 물 든 산천구경을 할 겸 소풍 삼아 아내와 처남과 동행하며 왕복 경치를 즐기고 맛있는 점심식사도하며 하루를 즐기는 멋도 좋아서 연례행사로 확정지은 것이다.

과도를 잘 갈아 감을 깎는다. 꼭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감을 깎는 내 손은 장인의 정성을 닮아간다. 몇 시간 걸려 감을 깎으면 감 꽂이에 꿰어 매단다. 예전에는 바느질 실로 하나하나 묶었다. 시간도 걸리고 잘못 묶으면 떨어져 망가지기 일쑤여서 애를 먹었는데 어느 해인가 상주에 갔을 때 보니 프라스틱으로 예쁘게 만든 게 있어 사다가 써서 편리했다. 올해 가보니 더 편리하게 만든 게 보인다. 감 스무 개씩을 매달도록 찍어낸 것인데 감 한 접을 매달려면 4 천 원 정도여서 저렴한데다 오래 쓸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가. 감을 서까래에 매달고 먼발치에서 보고 있으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시간이 지나 거무스럼 하게 겉의 색깔이 변하고 속이 말랑말랑하게 익으면 하나 따서 맛을 본다. 연시나 홍시에 비할 수 없는 쫄깃한 그 맛! 그 맛 하나가 가을 모든 과일의 맛을 대변한다고나 할까. 감은 계절의 전령이 된다. 곶감으로 완전히 익으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올 해는 곶감을 만들지 말고 방법을 달리하여 반 건조를 하여 말랑말랑할 때 냉동고에 두고 제사에 쓰고, 아이들 간식으로 주고 손님 접대용으로 하자고 내외가 뜻을 모았다. 두고 볼 일이지만 감과 곶감의 중간 형태이니 모양이나 맛이 특별할 것 같다.

상주에 다녀온 후 아내의 만류를 모른 체하고 청도반시를 한 박스 택배로 사 왔다. 청도 성주지역에서 생산되는 감인데 생김새가 넓적하여 반시(盤柿)라고 하는 것 같다. 전체적인 크기가 상주감만 못하고 가격도 비싼듯하여 맘에 들지는 않지만, 엎질러진 물, 반은 곶감용으로, 반은 연시용으로 하고 나중에 맛을 비교하여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하였다.

감 껍질은 따로 말려 다른 쓰임새로 쓴다. 바짝 말려 믹서로 갈아 두었다가 떡이나 여타 음식에 감미료로 쓰는 것이다. 나름대로 훌륭한 용도라 하겠다.

지금도 감의 종류에 헛갈린다. 단감, 침담근 감, 연시, 홍시, 곶감 등등 모양과 용도, 맛이 각각이니 다른 과일과 너무 다르다.

제사에 빠질 수 없는 귀중한 과일, 좀 더 감에 관하여 알고 싶어 참고문헌을 보니 감기, 피부탄력, 숙취해소에 좋다고 나와 있다. 거기에 보니 우리고장에 감이 안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감은 내한성이 약하여 성숙기인 9-11월에 21-23도가 돼야 하고, 연평균 기온이 11-15도가 돼야 한다니...

억지를 부려 올 봄, 감나무를 두 그루 사다가 햇볕이 잘 들고 바람막이가 되는 울 안에 심었다. 올 겨울 얼어 죽지 말라고 감나무 묘목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안마당에 심은 감나무가 주렁주렁 탐스런 감을 선사할 때까지 감을 사러 경상도 지방에 갈 것이다. 그리고 정성껏 감을 깎아 제수용을 만들 것이다. 감은 감이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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