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에세이]목표
상태바
[이상국 에세이]목표
  • 중앙신문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01.02 14: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교사를 천직으로 아는 선생이 며칠 전 교장 발령을 받았다. 기쁨도 잠시, 그동안 미루었던 신체검사를 하니 간암 말기다. 선생은 앞만 보고 달렸다. 일은 남보다 많이, 출근은 빨리, 퇴근은 늦게, 동료들 모임이나 직장의 상사, 선후배 경조사엔 빠짐없이 참석했다. 술좌석에선 술, 화투에선 죽어도 고를 부르며 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똑 소리 나게 언제 그랬냐 싶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내 몸, 내 집보다 직장이 우선이다. 사계절 쉴새 없이 달려온 목표가 완성되자 사형선고다.

과장 셋이 만났다.

A는 위장을 자르는 대수술을 받았고, B는 이가 몽땅 빠져 호호 할아버지이며, 나는 어느 여인의 말대로 폭삭 늙었다. 인생을 몽땅 쏟아 붓고 각자 목표 지점에 다다랐지만, 기쁨은커녕 인생의 종착역인 듯 망연자실. 낯선 얼굴이 되어 마주본다. 각자의 자리는 넘겨보지 못할 지엄한 자리지만, 이젠 부러워할 것 없는 폐허로 호화찬란한 의자는 이리저리 찢긴 넝마조각이며, 명패와 명함은 폐기된 구호나 빛바랜 깃발이다.

출세를 위하여 적을 만들지 말 것이며, 촌각이라도 긴장을 풀어선 안 된다. 일과 중엔 신문이나 잡지를 읽지 말 것이며, 민원인에겐 언제나 친절해야 한다. 어려운 일일수록 남보다 앞장서라. 이것이 우리들의 모토였다.

어느 과장 부인의 말을 들어보자.

남들은 남편이 출세해 부러워하지만 남들이 아이들과 봄 꽃놀이나 여름 바다, 가을 단풍, 겨울 눈썰매를 즐길 때 남편은 일요일도 없이 뛰었고, 쉬는 날 아이들이 남편 깨울까 노심초사하며 평생을 본고 나니 청춘은 사라졌다.

지금의 나 - 인생의 목표, 잡은 사다리를 끝까지 올랐으니 나는 출세한 걸까. 평생 전전긍긍하며 오른 자리에서 둘러보니, 선점한 사람에겐 겨우 시작하는 바닥에 불과해 자랑할 것도 못된다. 내가 출세한 것이 라면 오로지 나의 노력과 남들이 못하는 힘든 일을 꿋꿋이 해낸 대가일까.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오직 실력으로 출세한 것일까. 끗발이나 배경, 운 좋게 걸려든 행운 같은 것은 하나도 없을까. 운 좋은 직원이며, 남들의 도움을 받아 그럭저럭 살다보니 행운을 잡은 게 아닐까. 출세가도에서 도태된 사람들 중 나보다 못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들이 나보다 실력이 모자라거나 인물이 언변이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피땀 어린 노력과 인내의 결정체가 모여 이루어진 필연이라 우기고 싶지만, 그때그때 행운을 만난 우연이 아닐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리는 차지하기도 힘들지만 지키기도 힘든 법. 어느 틈에 보이지 않는 파란 눈빛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내가 떠나, 누가 앉는다 해도 감격의 순간은커녕 후배들 공략의 대상이 되지만,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잘 보면 죽음으로 돌진하는 지름길이지만 죽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목표달성이란 끝을 찾는다. 목표의 정점에 서서 결과를 헤아려 보자. 역사 앞에 자랑할 업적을 이루었는가. 학문의 도 끝자락이라도 잡았는가. 자손만대에 길이 남길 명성을 얻었는가. 아들 손자 먹고 남을 재산을 모았는가.

겸허하게 기도할 시간이다.

떠남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눈총 받는 자리와 울타리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무기력한 남편, 노부모 앞에 저지른 불효와 아이들 앞에 구차한 나. 인생은 표류일 뿐이다. 너는 죽음을 예비했는가. 할 일이 끝나지 않았다 항변하지 마라. 못 다한 일은 누군가 끝낼 것이며 세상은 너 없이도 잘 돌아 갈 것이다. 목표 지점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고 원망하지 마라. 삶이 당연했던 것처럼 죽음 또한 대단한 것 아니니…. 도대체 나는 뭐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단독] 3년차 의정부시청 여성 공무원 숨진 채 발견
  • 박정 후보 유세장에 배우 유동근氏 지원...‘몰빵’으로 꼭 3선에 당선시켜 달라 ‘간청’
  • 감사원 감사 유보, 3년 만에 김포한강시네폴리스 산단 공급
  • [오늘 날씨] 경기·인천(20일, 토)...낮부터 밤 사이 ‘비’
  • [오늘 날씨] 경기·인천(24일, 수)...돌풍·천둥·번개 동반 비, 최대 30㎜
  • 1호선 의왕~당정역 선로에 80대 남성 무단진입…숨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