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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동짓달이 되면 생각 나는것들 - (2)
  • 중앙신문
  • 승인 2018.12.1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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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겨울나기가 피난살이처럼 힘들었던 그때 그시절. 바람은 제멋대로 동장군을 집안까지 불러들여 서리꽃을 피웠고 차가운 얼음장을 만드는 행패를 부렸는가하면. 그것도 부족해서 앙칼진 소리를 내며 사방을 흔들어 놓는 바람에. 산속의 나무들은 강추위에 몸서리를 쳤고 바람막이 문풍지도 깜짝 놀라서 파르르 몸을 떨었다.

긴 긴 겨울밤 잠에 쫒기고 공부하기가 싫어도 아버지의 눈총 때문에 지루한 시간이 어서 빨리가기만을 재촉하다 보면 긴밤은 늘 배를 고프게 했고 눈앞에 떠오르는것은 언제나 떡이나 고구마와같이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먹거리 생각뿐이었다.

그럴때에 내 희망사항을 기분좋게 성사시켜준것은 시골인심이 더욱빛나는 동짓달이었다. 밤중에 요란하게 개짖는 소리가들리고 대문을향해 다가서는 발자욱 소리가들리면 그건 틀림없이 이웃집에서 돌리는 고사떡과 팥죽이분명했다.

심부름꾼을 향해 고맙다는 어머니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선잠을 깬 어린형제들과 나는 맹수처럼 먹거리 경쟁을 벌렸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공동분배의 원칙을 정해 난잡한 분위기를 수습하셨다. 형제들과 싸워가면서 한수저라도 더 먹으려던 팥죽이 어른이 된 이후로는 보리밥과함께 먹기싫은 음식으로 분류되어 내 식단에서는 쉽게 찾아 볼수가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도시로 이사와서부터는 나무를 흔들고 문풍지를 흔들던 앙칼진 바람도 만날수가없고 섬뜩한 부엉이 소리도 듣 질못한다. 도시로 가려진 방음벽은 나를 눈뜬 맹인으로 만들었고 귀머거리 소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어쩌다 바람이불면 그것은 가로수 은행잎을 떨꾸는 소리였고 유리창을 노크하는 작은 소리에 불과했다. 그옛날 밤이되면 어김없이 뒷산으로 날아들어 허공속에 영역를 과시하던 부엉이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렸고 부엉이를 벗삼아 밤새껏 뛰어놀던 작은 동물들도 깊은 산속으로 꼭꼭 숨어 버렸다.

환경이 파괴되어 썰렁해진 도시는 자연과의 만남이 단절되고 술취한 취객들이 내뱉는 요란한 술 주정소리만이 부엉이를 대신해서 밤하늘을 지저분하게 오염시킨다. 그 오래전 적막이 내려앉은 고요함속에 유유히흘렀던 밤의 정적소리는 동짓달 긴 긴 밤이되어도 이제 들을 수가없다. 도시의 난폭한 도로는 자동차가 엉켜져 시끄러운 소음뿐이고 옹기종기 모여있던 초가집들 자리엔 덩치 큰 아파트가 우뚝서서 제 세상인양 우쭐댄다.

한 장밖에 남지않은 달력에서 동짓날을 확인한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짜기 팥죽을 쑤겠다고 호둘갑을 떤다.

그런 아내의 모습이 낯설어 보이지만 일순간 뇌리를 스치는것은 동짓달에 서린 액운을 쫓기 위해 팥죽을 쑤었던 조상들의 지혜처럼 아내도 온가족의 건강을위해 팥죽을 쑤려드는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훈훈한 시골 인심처럼 이웃간의 소통을 위해 때를 맞추어 착안한 아내만의 발상이 아닐까하는 조심스런 생각을 가져보지만 정확한 판단을 내릴수가없다.

아마도 내 추상의 여력이 소진될 때쯤 솥에서 끓은 팥죽은 아내의 의도대로 사용될게 확실하고 저하늘의 초생달은 세상을 내려다보며 동정과 연민의 번뇌속에 장시간 머무루다가 떠나갈것이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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