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도 낚싯배 사고 1년…부실한 안전망 여전
상태바
영흥도 낚싯배 사고 1년…부실한 안전망 여전
  • 박승욱 기자  psw1798@hanmail.net
  • 승인 2018.11.29 18: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중앙신문=박승욱 기자 | 낚시꾼들 안전불감증 바뀌지 않아
해경 전용계류장 아직도 부족… 낚싯배 관리 규정 강화 지지부진

작년 12월 3일 오전 6시 영흥도.
동이 트지 않은 초겨울 새벽 낚시꾼들이 인천 영흥도 진두선착장에 삼삼오오 모였다. 일요일을 맞아 막바지 바다낚시를 즐기려는 강태공들은 낚싯배에 오르며 월척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들은 낚시어선 ‘선창1호’(9.77t급)의 조타실 아래 선실에 끼어 앉아 선장이 안내하는 ‘물 반 고기 반’의 명당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선실이 꽉 찬 탓에 일부 낚시꾼은 조타실 아래 조그마한 쪽방에 몸을 구겨 넣기도 했다.
선착장을 출발한 지 불과 6분쯤 지났을 때였다. 어선 좌측에서 영흥대교를 지나친 급유선 명진15호(366t급)가 차츰 다가왔다. 서로 피할 줄 알았던 두 선박은 어느 쪽도 피하지 못한 채 결국 충돌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낚시어선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고요한 새벽 바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결국 낚시어선 승선원 22명 중 15명이 숨졌다.
2015년 9월 제주 추자도 해역에서 발생한 돌고래호(9.77t급) 전복 사건으로 15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된 이후 2년여 만에 비슷한 낚시어선 참극이 반복된 것이다.

영흥도 낚시어선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낚시어선 안전망 구축 사업은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우선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과속을 일삼는 낚시어선 종사자들의 운항 행태와 구명조끼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는 낚시객들의 안전불감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대부분의 낚시어선은 새벽에 일찍 출항해 오후 4∼5시 귀항하는 ‘당일치기’ 일정이라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명당을 선점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새벽잠을 쫓으며 배를 탄 낚시객이 목적지에 이르기 전까지 방에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열 기구에 취약한 소형 낚시어선에서 자칫 불이 나거나 양식 어장 그물에 걸려 전복될 경우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작년 영흥도 낚시어선 사건도 운항 종사자들의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했다. 급유선 선장 전모(39)씨는 낚시어선을 발견하고도 충돌을 막기 위한 감속이나 항로변경 등을 하지 않았고, 갑판원 김모(47)씨는 전씨와 함께 ‘2인 1조’ 당직 근무를 하던 중 조타실을 비워 관련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동서 사이인 이들은 업무상과실치사·치상 및 업무상과실선박전복 혐의로 구속 기소돼 항소심 끝에 각각 금고 2년, 금고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낚시어선 선장도 좁은 수로에서는 작은 배가 큰 배의 흐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좁은 수로 항법’을 지키지 않은 과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사고로 숨져 ‘공소권 없음’ 처분됐다.

해양경찰의 구조 보트 전용 계류장 확충사업도 예산 문제 때문에 획기적인 진전은 없다. 작년 영흥도 사건 당시 전국 해경 파출소 중 전용 계류장을 보유한 곳은 95곳 중 23곳(24.7%)에 불과했다. 올해에 14곳을 추가로 확보했지만 해경 전용 계류장 보유율은 38.9%에 불과하다.

해경 전용 계류장은 신속한 출동을 위해 필수적인 시설이다.

작년 영흥도 사건 때 인천해경 영흥파출소 보트는 선착장에서 불과 1마일(1.85km) 떨어진 사고 현장까지 가는데 무려 37분이 걸렸다. 해경 구조 보트가 민간 계류장에서 민간선박 7척과 함께 묶여 있는 탓에, 이들 선박을 풀어내고 다시 정리하는 데에만 13분이 걸렸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이를 놓고 “119구조대 구급차나 소방차가 일반 주차장에 같이 주차하는 꼴”이라며 “출동 지시받고 나가려고 하니 일반 차량에 걸려 바로 출동 못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해경은 현재 760여명인 구조 전문인력을 2020년까지 1150여명으로 늘리고 대형헬기와 연안 구조 정도 추가로 도입하며 구조 역량을 높일 방침이다.

낚시어선 관리 강화를 위해 쏟아진 대책들도 관련법 개정에 시일이 걸려 상당수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영흥도 낚시어선 사고 이후 해수부가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낚시전용선 제도’는 어민 반발로 진척이 없는 상태이고, 최소 2년 이상 경력의 선장만 낚시어선을 몰 수 있도록 하는 자격 기준 강화도 낚시관리 및 육성법을 개정해야 가능하다.

낚시어선에 구명뗏목이나 위치 발신 장치 설치를 의무화하겠다던 당시 대책도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낚시어선 안전관리 강화와 관련해 당시 발표한 대책들은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해 실제 시행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예정”이라며 “아직 개정안이 발의되지 않은 상태로 조만간 의원 입법으로 발의하려고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4년간 영업 신고를 한 전국 낚시어선 수는 2014년 4381척, 2015년 4289척, 2016년 4500척, 지난해 4487척 등으로 매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으나 낚시어선 이용객 수는 2004년 206만명, 2015년 295만명, 2016년 342만명, 지난해 414만명으로 해마다 급증했다.

낚시어선 이용객이 늘자 사고 건수도 2014년 87건에서 지난해 263건으로 크게 늘었고, 같은 기간 인명 피해도 43명에서 105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해경 관계자는 29일 “내년에 구조·안전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예산 770여억원을 확보했다”며 “올해 예산 627억원보다 23%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구조 전문인력과 각종 장비를 늘리고 해경 전용으로 쓸 구조정 계류 시설을 확충하는 등 구조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단독] 3년차 의정부시청 여성 공무원 숨진 채 발견
  • 박정 후보 유세장에 배우 유동근氏 지원...‘몰빵’으로 꼭 3선에 당선시켜 달라 ‘간청’
  • 감사원 감사 유보, 3년 만에 김포한강시네폴리스 산단 공급
  • 1호선 의왕~당정역 선로에 80대 남성 무단진입…숨져
  • [오늘의 날씨] 경기·인천(25일, 월)...흐리다가 오후부터 '비'
  • [오늘의 날씨] 경기·인천(22일, 금)...오후부터 곳곳에 '비' 소식, 강풍 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