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 칼럼]고장난 내 머릿속의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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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고장난 내 머릿속의 컴퓨터
  • 중앙신문
  • 승인 2018.11.2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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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아카시아 꽃잎 물결에 가려져 꽃이 피어도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던 감나무의 존재를 가을이 올때까지도 까맣게 몰랐는데 계절이 바뀌고 단풍이 들자, 낙엽을 떨꾼 나무가지 사이에서 빨간감들이 쏙쏙 얼굴을내밀며 그 존재를 알린다.

순간적으로 그 아름다움에 취해 감나무 그늘에 다가서자 여기 저기서 홍조를 띈 작은 얼굴들이 기쁜듯이 나를 반긴다.

견물생심에 가지에 달린 붉은 감 하나를 따볼까 했으나 아무래도 덜익은 생각이 들어 따는 것을 그만두고 한동안 관리를 하지않고 방치했던 감나무 주변에 눈길이 갔다. 수년전 시장에서 구입해 담장 가까이심었던 감나무는 심은지 2년이 되어서야 꽃을피우고 가지에 열매를 달았다.

그러나 시비와 병충해 방제를 게을리해서 그런지 어느해에는 열매가 안달려서 애를태웠고 또 어느해는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많이달리는 해걸이를 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부모님 생전에 감나무는 논란의 대상물이 되기도했다.

성미 급하신 아버지는 감이 안달릴 때마다 나무를 베어버리라는 역정을 내셨고 어머니는 곤경에 처한 아들때문에 아버지와의 날선대립도 적지않게 하셨다. 다행히도 감이 많이 달린해에는 감은 아버지의 친구분들 술상에 곁들여지는 술안주였고 어머니에겐 당신의 품을 떠나 분가한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선물이 되기도했다.

흘러간 옛생각이 나서 잠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사이 한줄기 바람이 불어오고 낙엽이 후두둑 떨어졌다. 나뭇잎이 공중 곡예를 부리며 떨어진곳을 바라다보니 그곳엔 황갈색으로 변해 볼품없는 감나무잎이 수북했다. 낙엽을 바라다보면 왠지 허전한 마음이들고 쓸쓸한 기분에 젖어든다.

세상사 이치가 봄이오면 여름되기 마련이고 여름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가면 추운겨울이 찾아오는 것이 대자연의 법칙 이라 하지만. 무심한 세월은 어찌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가지 못하고.

백년도 못사는 인생살이를 쥐락펴락할까...

낙엽이 떨어지는 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낙엽을 부지런히 쓸어모은다. 도심의 길거리에서 수거된 낙엽은 퇴비같은 부산물로 활용 되고 주택과 정원에서 쓸어 모아진 소량의 낙엽은 화염속에 불살라져 허공속으로 사라진다. 학생시절 읽었던 낙엽을 태우면서의 글이 생각난다, 교과서를 통해 읽혀졌던 당시의 글내용은 어린학생의 가슴에 꿈같은 낭만을 심어 주었고 문학생활의 밑거름을 지펴주는데 충분했다.

낙엽을 태우면 구수한 냄새가 주변에 은은하게 퍼져 나가고 사람들의 후각을 자극한다. 봄의 풀향기는 싱그럽지만 식물이 동면하는 겨울철엔 그 향기가없다. 향기잃은 계절에 낙엽을 태우는냄새는 메마른 향수를달래주고 추억의 옛시간속으로 자꾸만 빠져들게한다.

단풍을 보게되면 그림과같은 가을정취 속으로 흠뻑 빠져들지만 낙엽을 보는 관념에 있어서는 버려진 쓰레기처럼 생각하고 설한의 겨울을 인식하게 되어선지 곧바로 외면을 하게된다.

그져 자연의 향기에 심취되어 낭만을 찾는사람들과 세월이 빨리감을 한탄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공허함만을 각인 시켜줄뿐이다. 박찬홍 시인이 쓴 추억을 태우면서의 수필집을 읽었다. 인생 팔십을 넘어서서 낙엽과같은 무력함이 들어서일까.

노시인은 어느날 다가올 귀천을 준비하고자 추억의 보관품인 사진첩과 서류뭉치를 모두 꺼내어 감나무 밑에 앉아서 추억을 한장한장 태웠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겠지만 노시인이 오랬동안 간직했던 추억들이 낙엽속에 태워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것이 자못 서글퍼진다. 잡을수 없는것이 세월이고 세월이 빨리 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원이다.

오죽하면 가는세월 잡으려고 막대를 들었더니 백발이 먼져와서 길을 막더라는 절박한 말도있을까. 노시인의 행동처럼 언젠가 나역시도 추억을 태우기 위해서 주변정리에 나설 것이다. 때묻은 책들과 사진첩을 태우고 애지중지 모았던 문학전집도 버려지거나 허무하게 태워질 것이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것은 머릿속에 잔뜩 저장된 추억들을 지우는 일이다. 저장용량이 컴퓨터와 견줄만한 내머리속의 저장고는 수명이다 됐는지 최근들어 오작동을 자주한다.

추억을 지우는 단계에 이르기 까지는 아직은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것 같은 여유로운 생각이들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머리속의 고장난 컴퓨터는 추억을 지우려는듯 기억용량을 점점 잃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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