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 칼럼]올챙이 작가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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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올챙이 작가의 넋두리
  • 중앙신문
  • 승인 2018.11.0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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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글을 잘써서 독자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시키는 일은 매우 힘든 노릇이지만, 자신의 일기를 쓰고 기록하는 일은 특별한 방법없이도 수월하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머리 좋은 것만은 선천적이라 하겠지만 글쓰는 재주 필력은 심신을 수련하고 오로지 문학에 올인하여 문장력을 키운 후천적 결과임을 자타가 부인하지 못한다.

문학의 세계는 좁은 의미로 볼 때 창작을 통해서 자기만족과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의 실현이고 넓은 의미로보면 인생의 희노애락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삶의 이야기로 불리어진다.

문학에서 보는 사물의 관념은 작가의 구상과 판단에 따라 방향도 다르고 내용도 달라진다. 글을 쓰는 부단한 노력은 세월따라 무궁하고 실타래처럼 끝이없다. 희망사항에 불과하지만 명망높은 거장들처럼 불세출 뛰어난 작품을 남기고 싶은 것이 문인들의 한결같은 욕망이다.

무릇 영웅은 난세에 나타나듯이 명작도 시대적 배경을통해 등장하고 독자의 환영을 받는다. 문인들의 생활을 보면 걸작을 남기고 싶은 의욕 하나로 성직자들처럼 고행의 길을 걷는가 하면 몇달 몇날의 밤을세워 써놓은 글을 졸작이라며 찢어버리고 문맥이 떠오르지 않아서 글을쓸 수가 없다하여 글쓰기를 중단하고 산중을 헤메기도 한다.

또 양심 선언을 통해 절필을 선언하고 문단을 떠나는 사람도있다. 대부분의 문인들이 자기글에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 다른 사람의 쓴 글을 탐독하고 업그레이드하여 문장력을 높여나간다. 현대문학의 실태를 보면 상업성글이 너무나도 난무하여 문학의 순수개념을 훼손하고 있다.

특히 아름답고 순수했던 고전주의의 자연문학은 고유의 색갈을 잃어버렸고 이념과 사상이 극단적으로 표현된 포풀리즘의 인간문학이 성시하여 꽃을 피우고 있다. 문학은 종교처럼 빛과 사랑을 나누어주고 내일의 희망을 약속한다 과거의 문학이 자연주의에 치중했다면 현대문학은 인간본색을 심층 고민한다. 우리나라의 옛문학은 선비와 기생문화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다해도 과언이 아닐성싶다. 시대가 바뀌고 책을 가까이하는 시간이 늘다보니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책과 일상생활을 같이하는 열린 문학관으로 바뀌어간다.

돌이켜보건데 한국문학은 일제의 한글 말살탄압으로 오랜 정체기를 걸었으나 광복 후 자유로운 국어사용과 6,25 전쟁을 통한 서양 문화의 도입 및 민주화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더욱 성숙해졌다. 문학은 감성적이면서도 이성적이기도하며 실체적인면도 내포되어있다. 인간을 주제로한 문학은 신문과 방송의 내용도 담겨지고 때로는 성경과 불경의 내용도 소재가 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글을 쓰는데는 국문학을 전공했다하여 더 잘 쓴다는 법이 없다. 학교에서 배운 국문학은 배움의 체계적인 단계일 뿐이고 주옥같이 아름다운 글과 내용은 오로지 생활의 체험 속에서 태어난다.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미래를 향한 열망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많은 문인들이 경제적 여건에 속박되어 상업성글에 치중하는 오늘의 현실을 볼 때 문학은 그져 인생겉치레요 버려질 소모품에 불과 할 것만같은 어설픈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친다.

매월 모이는 친목회모임의 대화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끝에 선배 한분이 문학 동아리강좌에 나가는 이야기가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그는 유명교수가 운영하는 문학 강좌에 나가 6개월 코스로 주 2회의 수강을 받으면서 글을 써내어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망과 푸념석인 말을 이어갔다. 모든 사람이 모인 발표회에서 선배는 매번 혹평을 받았고 같이다니는 사람의 글은 칭찬 일변도라했다. 그간의 내용을 파악해보니 글을 잘 쓴다는 사람은 교수의 후광을 뒤에업고 문단에 등록한 사람이었다.

이내 상황을 판단하고 짐작 할만했다. 그 교수의 행동이 맘에 안들고 어깃장이 났다. 누군들 처음부터 글쓰는 재주가 뛰어났겠는가 글쓰는 노력 자체만이라도 아름다운 것이고 나이들어 글을 쓰겠다는 의지와 용기만 해도 칭찬 해줄만한 일인데.

좀더 자신감이 들도록 보다듬어 주지 않고 객관적인 탓만하는 리더쉽이 아쉽기만 했다. 악글 이라도 끝까지 읽어주고 들어 주는 것이 미덕이고 문학이다. 글이란 쓰면 쓸 수록 기량이 일취월장하고 발전하기 마련이다.

당장은 문장실력이 형편없다 하더라도 미래는 희망이 보이고 비젼을 생각할 수가 있다. 선생님의 글은 멋있고 제자의 글은 형편없다는 사고방식은 버려야 한다. 대학교수도 제자의 글이 탐이나서 자기의 글로 복제하는 사례가 빈번한 세상이다.

죽을 상을 쓰고 있는 선배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교수가 꼭 알아줘야만 글을 쓰나요 글을 계속 쓰다보면 좋은 글을 창작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니까 문학을 중도에서 포기 하시지 말라고 풀이 죽은 선배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지만 영 뒤가 개운치 않다.

우리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하더니 선배가 처한모습이 지난날의 내 모습 이었거늘 나는 올챙이 시절의 아픔을 벌써 잊어가고있으니 문우들이 볼 때 가소롭고 우습기만 해 냉소를 퍼부을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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