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섭의 목화솜 모정]해산령 굽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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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의 목화솜 모정]해산령 굽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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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2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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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지난 주말 설악산 단풍이 절정이라고 떠들썩하다. 무엇을 잃어버린 듯 깜짝 놀라 단풍구경을 가기로 일행을 급히 만들어 길을 나선다. 설악산이야 계절 따라 몇 번씩 다녀왔으니 굳이 붐빌게 빤한 그곳 아닌 곳으로 하고 전부터 가고 싶던 곳, 말만 무성하게 듣고 아직 미답인 화천, 양구로 길을 정했다. 예부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나는 ‘가을은 가벼운 여행의 계절’이라고 정의 한다.

춘천 쪽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아직도 안개가 뿌옇게 앉아 있는데 차량들이 띄엄띄엄 달린다.

춘천을 벗어나 네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한적한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화천읍으로 향하는데 단풍철이라지만 길이 한산하다. 구절양장의 고갯길을 오르내리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색채의 향연이 현란하고 거의 수확을 끝낸 논밭이 한 해의 수고로움을 쉬며 누워있다. 길옆의 단풍을 구경하랴 동행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앞에 강이 나타나고 제법 큰 다리 화천대교가 놓여 있다. 이곳이 908km2, 2만5천명이 삶을 이어가는 곳, 화천이다. 여주에서 130km 떨어진 곳, 오른쪽으로 차머리를 돌려 조금 가니 강을 가로질러 목재다리가 나온다. ‘숲으로 다리’라는 명찰을 달았는데 그 이름은 ‘칼의 노래’ 작가인 김훈이 2009년에 지었단다. 다리를 건너면 산길과 나란히 물위에 다리를 띄워 놓았다. 젊은 연인들에 질 새라 우리도 사진 찍기에 바쁘다. 산천어축제 등등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가 많다더니 과연 그렇다. 비수구미, 파로호, 화천댐구경을 뒤로 미루고 평화의댐으로 길을 잡았다.

점심식사 메뉴와 식당을 고르다가 길을 지나쳐 해산령 턱밑이다. 길모퉁이에 H가든이 조그마한 간판을 달고 지나는 손님을 부른다. 여기를 지나치면 식당이 없을 것 같아 오삼불고기를 주문하는데 여주인의 입담도 구수하고 양념의 맛과 질이 맘에 들어 소주 맛이 달다. 집에서 가까우면 자주 오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걸 보니 맛이 있었나 보다.

그 곳 평화의댐까지 가는 길을 상상할수록 입맛이 당기게 여주인이 자랑을 하는데, 산을 오르며 보니 선홍빛, 노랑색, 거무튀튀한 암갈색 이파리가 절정을 이루었다. 단풍이라면 진홍색이 많아야 눈에 드는데 누렇게 익거나 담갈색으로 죽어가는 이파리들이 많아서 조금 아쉬움을 남긴다. 해산령 아흔 아홉 구비를 넘어 최북단 최고봉에 자리했다는 해산령 터널을 지난다. 터널길이가 1986m인데 댐 착공연도와 일치하는 건 우연일까. 아마 ‘평화의길’이라고 불리는 화천읍부터 여기까지의 2차선 포장도로는 댐 공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주차장에 다다르니 발 빠른 관광버스며 승용차들이 자리를 차지하였다.

북한이 금강산 수계의 물을 가두었다가 한꺼번에 흘려보내면 수도권까지 물바다가 된다는 이론으로 1986년, 양구 천미리와 화천 동촌리를 잇는 댐을 기공하여 1988년 5월 1단계 공사를 마쳤는데, DJ정권 때 2차 공사를 시작하여 노무현 정권 때 완공하였다. 길이 601m, 높이 125m, 저수량 26억 톤이라는데 저수량은 감이 잡히지 않고, 비스듬히 누운 댐 벽의 위용이 자랑스럽다. 가을볕을 담은 차가운 파란물이 졸졸 흐르고, 댐에서 멀리 가까이 보이는 경관이 장관이다. 세계평화의종공원도 볼만하다. 60여 분쟁국에서 보낸 탄피 37.5kg(1만관)을 녹여 종을 만들었고, 그 옆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얼굴과 손을 만들어 붙여 악수를 할 수 있게 하였다.

그 옆 계단을 내려가면 비목(碑木)공원이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화천북방 백암산에서 근무하던 육군소위가 김일성 침략전쟁당시 산화한 병사 돌무덤을 보고 제대로 된 무덤도 없는 젊은 넋을 위로하고자 지은 것. 작사자 한명희교수는 내게 ROTC 1기 선배가 된다.

한국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벌써 60년, 그러나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3대째 대를 이어 덤벼드는 그들을 보며 상생과 평화, 안정의 갈망을 가르치고 더 이상의 비극이 없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을 찍고 가져 온 음료로 목을 축이며 돌아 갈 길을 계산한다. 당초에 양구로 가기로 하였으니 가기는 하는데, 가며 보니 올 때와는 달리 길이 밋밋하고 산도 해산령에 비해 단조로워 재미가 없다.

누가 여행을 웰빙, 힐링, 명상이라 했던가. 짧은 여행에 하루를 만끽하니 해가 저물어 간다. 여주에도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가 많으니 손님들이 가득하기를 함께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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