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섭의 목화솜 모정]따라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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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의 목화솜 모정]따라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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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0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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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 칼럼위원)

[중앙신문=중앙신문] 길을 나선다. 처음 가는 길이지만 아주 친숙하고 정이 넘치는 길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잘 닦여진 문화의 길이다. 아니 민속의 길인지도 모르겠다. 큰 맘 먹고 문화인지 민속인지 모를 그 길을 가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문화와 민속의 차이를 잘 모른다.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생활방식을 문화라고 하며, 한 사회 안의 사람들이 함께 배우고 공동으로 가지게 되는 모든 생활방식, 의, 식, 주, 풍습, 도덕, 종교, 언어, 자연환경이나 역사와 전통이 문화에 속하고, 민간생활과 결부된 신앙, 습관, 풍속, 전설, 기술, 전승문화 따위가 민속이라고 한다니 너무 복잡하여 나 같은 문외한이 알 도리가 없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찌개, 김치, 불고기 같은 음식과 윷놀이, 제기차기, 연날리기, 심청전, 춘향전 같은 옛날이야기, 제사문화 속에서 자라고 커 왔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익혀 온 농기구들, 낫, 쇠스랑, 호미를 지금도 쓰고 있으며 삽, 곡괭이도 없어서는 안 될 농기구이다. 언제 누가 창안하고 발명하여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가. 모양새로 보아서는 크게 고쳐지거나 개량된 흔적도 없으니 당시의 혜안이 얼마나 절묘한가. 절로 고개가 숙여 진다.

음식은 또 어떤가.

어느 시기에 어느 분이 만들어 퍼트렸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우리의 밥상을 채우는 간장. 된장, 고추장, 두부, 김치, 그 외의 수많은 발효식품들...

몇 년을 두어도 변하거나 쉬지 않는 장류(醬類)를 보면 조상의 지혜가 참으로 존경스럽다. 우리는 현대과학의 물을 먹으면서도 옛날 어른들의 지혜와 지식의 은덕을 입고 있는 것이다. 공정이 현대화되고 생산이 일관작업이 된 것이 다를 뿐 맛, 색깔, 향기가 그대로이니 발효과학 기술의 진수는 위대하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 온 장 담그기 행사는 며느리로, 그 며느리의 며느리로 대를 이어 전수 되면서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열쇠가 되고 가풍이 된다. 집안마다 장맛이 다른 이유다.

문화와 민속이 헷갈리는 대목은 또 있다. 우리들 서민의 당분 공급원인 엿이다. 엿이 문화인지 민속음식인지 나로서는 구분이 안 된다.

어렸을 적 설 대목이 되면 어머니는 엿을 고아 제사용 조청을 만들고 콩을 볶아 콩엿을 만들어 우리들 간식으로 주셨다. 짙은 갈색 엿은 우리들에게 더 없이 좋은 간식이었다. 한 조각이라도 더 먹으려고 동생들과 눈치 싸움하던 추억은 지금도 입가에 미소로 남는다. 엿 지게미를 한 사발씩 받아들고 마음껏 퍼먹던 기억은 옛날이야기가 돼 버렸다. 여주 장터, 길가에 엿장수가 좌판을 벌리면 엿치기 시합이 벌어진다. 가운데에 토막을 내어 누구의 구멍이 크게 뚫어졌는지 눈으로 재보고 작게 뚫어진 쪽이 지는데 엿 값을 물어내자면 약도 오르고 화도 났을 것. 지금 당분 공급원이 다양해서 일상생활에서 엿이 멀어져 엿 장사도 볼 수 없으니 아쉽다. 어떻게 보리에 물을 부어 싹이 트게 하고 그것을 말려 길금(엿기름)을 만들 생각을 하였으며, 단 맛을 내는 촉매역할을 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곡식으로 밥을 지어 길금으로 삭힌 뒤 밥이 물처럼 되도록 끓이고 그것을 자루에 넣어 짜낸 다음 단 물이 진득진득 해 질 때까지 고아서 엿을 만드는 과정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으니 발명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가.

내 아내는 다른 것은 다해 보았지만 지금까지 엿을 고아 본 적이 없다. 여주 장에서 갱엿을 사다가 묽게 녹여 땅콩엿을 만들어 먹는 게 전부였다. 내용물이 무엇인지, 중국산은 아닌지, 위생은 또 어떤지, 의심이 들어 찜찜하던 차,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치악산 황골 엿을 주문하여 쓰고 있었는데, 재료가 쌀 반, 옥수수 반이라고 하였다. 엿을 사겠다고 하니 아내가 만들어 보겠노라고 자청한다. 내 아내는 올 해 처음으로 엿을 고았다. 동네 부인들로부터 집에서 고면 되지 왜 비싸게 주고 사느냐는 핀잔을 받았나 보다.

어디까지나 시험용이니까 잘못되면 버릴 셈치고 쌀 3되로 전기밥솥에 밥을 하고 길금 50g을 넣어 밤새 삭히어 감주를 만들고 엿물을 내어 다음 날 가스 불에 끓였다. 어머니 시절에는 가마솥에 장작불로 끓이면 넘치는 수도 있어 상당히 조심해야 했는데, 가스 불은 조절하기도 쉬워 편했다고 한다. 저녁때 되어 귀가하니 아내의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진다. 대성공이라고 좋아 한다. 중간크기의 쟁반 두 판이 나왔다고 하며 땅콩엿을 내어 놓는데 정말 지금까지 사다 먹은 엿보다 달고 부드러워 얼마든지 먹을 것 같다. 맛, 색깔, 굳은 정도가 알맞고, 엿이 잘됐다고 만족감을 표시하며 이번에는 양을 늘려 제대로 고아 보라고 부추기니 어림없는 소리 말라고 일갈 하면서도 다음 계획을 이야기 한다. 조상의 솜씨 따라 하기가 성공한 순간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이렇게 저렇게 세상을 만들어갔고, 세상은 만들어 졌다. 그 중 음식문화도 한 몫 한 것이다. 우리의 문화와 민속이 되었고, 오늘 우리는 따라 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 문물이 세상을 뒤덮어 문화와 민속에서 옛것이 없어지고 가려지고 망가지고 있으니 정신을 차려, 오늘의 따라 하기를 바삐 며느리에게 전수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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