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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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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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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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만물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인 새벽, 무겁게 내려앉은 새벽안개를 헤치고 관광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려 나간다. 졸며 서 있는 가로등은 멋모르고 손짓하며 인사를 건넨다.

여주농촌관광협의회에서 협회 회원들에게 造景교육을 겸한 통영 長蛇島 해상국립공원 견학을 실시하는데, 고교동창이자 협회감사인 신건수의 주선으로 아내를 동반하여 함께 한 것이다. 회원 40여 명 중 바쁜 회원 빼고 20여명이 여장을 꾸렸다. 모두 낯선 얼굴이지만 곧 친숙해 지고, 너그럽고 덕망이 높게 잘 생긴 권혁진회장과 구면인 변국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새벽안개가 걷히며 맑은 햇빛을 받은 단풍, 촌락, 들판, 올려다 보이는 덕유산이 여행객들을 즐겁게 한다.

통영 가는 길은 차가 붐비지 않아 금산, 고성휴게소를 들리고도 4시간 남짓하여 부두에 도착하였다.

잘 정돈된 시가지, 아침 해를 받아 빛나는 앞 바다, 늘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 바다, 비늘처럼 반짝이는 잔잔한 파도, 이곳이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백전백승 격전지이다.

통영항구에서 10시, 98인승 배를 타고 장사도 가는 뱃길은 한산도를 지나 점점이 떠 있는 크고 작은 섬을 비키며 미끄러지듯 달려 45분 만에 부두에 닿는다.

선장과 기관장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뱃길을 설명하고, 통영이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이라고 자랑 하는 사이 도착하니 선착장에 ‘까멜리아’라는 간판이 우리를 맞는다. 선장이 두 시간 가량 자유 시간을 주며 장사도 해상국립공원을 둘러보고 부두로 내려오라고 안내하며 떠날 때는 다른 곳에서 출발하니 타는 곳과 배이름을 잘 알아두라고 당부한다. 잘 못해서 거제도로 가버리면 자기는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너스레를 떠는데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나그네의 마음을 푸근하게 감싼다.

장사도가 어떤 곳인지 잔뜩 기대를 하며 올라간다.

면적 390,131㎡섬 모양이 뱀을 닮아 장사도라는 이름을 붙였다는데, 북서길이~남동길이 1.9km, 너비 400m, 해발 101m이다. 공원으로 조성된 넓이는 98,000㎡, 기후가 온화하여 난대림이 울창한데 대부분 동백나무였고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풍란, 석란이 자생하고, 비탈길을 돌아 잠시 올라가니 정상이 나타나고 구경거리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인공을 최소화하고 자연을 최대한 살려 동백 터널길, 미로정원, 허브 가든등 20여 가지의 주제정원과 온실, 야외공연장, 조각상, 야외갤러리를 배치하여 눈요기를 시킨다.

멀리 바라보이는 죽도, 대덕도, 한산도, 가왕도가 옹기종기 서 있는데, 잔잔한 물결, 빛나는 햇볕을 받으며 한가롭다.

여행사에서 평생 꼭 보아야 할 관광거리로 꼽았던 하롱베이를 보고 낙담했었는데, 진즉에 한려수도를 보았다면 베트남에 안 갔을 것이다. 몇 십 년 전, 부산에서 여수로 배를 타고 훌쩍 지나쳤던 통영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길바닥에 흰 페인트로 화살표를 그려 관람코스를 안내하니 그대로 따라가며 이 곳 저 곳 살펴본다. 그 전에는 몇 가구 어민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고 가옥도 한 채 남아 있다. 천천히 걸으며 가을을 만끽하고 아내의 권유로 포즈를 취하며 남방 식물들과 친구가 된다. 절벽 아래로 펼쳐진 숲, 숲, 숲, 그 사이로 한가롭게 선회하는 바닷새, 이렇게 작은 섬에 학교(장사도 분교)가 있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다시 비탈길을 올라 정상에 이르면 내려가 배를 탈 일만 남았다. 아이스크림과 몇가지 물건을 파는 가게가 있지만 손님들의 눈을 끌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서둘러 선착장으로 내려가려는 객을 억지로 붙잡는다. 내려가면 앉을 자리도 없으니 시간 될 때까지 여기서 쉬라고. 그렇게 하여 몇몇은 지갑을 연다.

김밥 한 줄로 때운 아침은 점심식사를 기다리게 하는데, 통영 선착장 바로 앞 식당에 올라가니 매운탕에 여주에서 싣고 온 막걸리가 기다리고 있다. 맛을 음미 할 틈도 없이 배를 채우고 여자들은 건어물 가게로 달려가 한 아름 쇼핑을 한다.

왜놈들이 파 놓은 해저터널을 (차는 다니지 못하게 막았고 길이는 500m도 안 된다. 기대하면 실망)걷고 귀가 길에 올랐다.

여주 관내 각 지역에서 지역사회 발전과 농가소득증대에 온 힘을 쏟는 그들과 함께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들의 노고가 갸륵하고, 대학에서 농업경제학을 공부하고도 평생 ‘農’자 옆에 안 간 내가 미안하고 부끄럽다.

갔던 길을 되돌아 여주에 당도하여 저녁식사를 마치니 벌써 어두워 졌다.

아내가 한마디 한다.

“거제 外島 관광농원에 비하면 볼거리나 규모가 비교도 안 되게 적고, 조경강의도 듣는 줄 알았는데 기대에 어긋나 서운하지만, 훌륭한 농부들과 함께하여 보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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