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엄태준 변호사의 인생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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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엄태준 변호사의 인생 스토리'
  • 박도금 기자  jasm8@daum.net
  • 승인 2017.03.1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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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과 겸손 최고 덕목으로 법률문화 발전 위해 노력’
엄태준 변호사가 변호사로서의 자긍심과 의뢰인을 대할 때에는 겸손한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 중앙신문=박도금 기자 | Q 엄태준 변호사에 대해 소개해 달라?

A 엄태준 변호사는 1963년 9월 1일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송말 1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이천 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이천시청 고문변호사, 이천세무서 과세전 적부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이천지역위원장, 중앙당 부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천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이지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서울로 이사하면서 유·청년기를 타향에서 보냈지만 변호사가 된 후 1999년 고향으로 돌아와 2000년도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원해 활동하며, 지금은 부모님과 여동생 등 함께 대가족이 고향에서 함께 살고 있다.

Q 법 공부를 하게 된 계기와 공부를 하면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A 대부분 법조인의 경우 애초부터 그 길을 걷기 노력하고, 그 결과로 인해 법조인이 되는 것아 보통이다. 하지만 나는 법학과를 나오기는 했지만 법조인보다 오히려 기자가 되고 싶었다. 졸업 후 기자 시험을 치고 나서 떨어지게 됐다. 이후 진로를 고민하다가 법학과를 전공을 했기에 법조인에 도전하자는 마음을 먹게 됐다.

당시에는 가정형편이 많이 안 좋았다. 어려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의 걱정이 심했다. 나 자신 스스로 공부를 안 하기도 했고 공부가 안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전국적으로 고등학교 두발과 복장 자율화가 일어났었다. 당시 데모에 가담했다가 퇴학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학교에서는 부모님을 모셔 와서 자퇴를 하라고 권유해, 결국 자퇴를 하고 1년을 쉬게 됐다.

이후 숭실고등학교 야간학교를 가게 됐고 한 살 어린 친구들과 학교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같은 학급생이지만 왠지 그들에게 지는 느낌을 받아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그때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력고사를 치렀지만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해 재수를 하게 됐다. 그렇다 보니 같은 또래의 친구들보다 2년이 늦어지게 됐다.

학교 선택을 할 때에도 원하는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아버님에 대한 저항의식이 컸다. 아버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보란 듯이 대학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단국대학교에서 학비도 면제해 주고, 생활비도 지원해 주고, 대학원도 원하면 지원해주고, 책도 다 준다는 말에 학교생활을 했다. 이후 군대를 다녀와 졸업을 하고 첫 시험을 본 결과 떨어졌다. 그래서 전공을 살리고자 사법고시를 시작했고 2차만 4번의 떨어지고 7여 년 만에 합격했다.

지금은 많이 다듬어졌지만 당시 내상황이 아무리 열악해도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 형편이 좋지 않다 보니 후배들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러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신림동 고시촌 설봉장학회라는 곳에서 고시생들을 위한 합숙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 그곳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고 보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격을 담보해 가면서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합격하더라도 순수하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해 후배들과 대자보를 붙여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설봉장학회를 운영하던 그는 큰 사업을 하던 사람으로 오히려 고소를 당했다. 그렇게 1심에서 벌금형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던 중 항소를 제기한 상태에서 2차 시험 준비를 4개월 동안 전력투구해 시험을 보고 잘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발표일이 다가오면서 점점 약해졌다. 이후 합격자 발표가 났고 합격자 발표가 나면 굉장히 기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담담했다. 어머니와 통화 후 기뻐하는 걸 보고 합격했다는 걸 실감했다.

이후 항소심 재판에서 재판관들이 시험 발표일 이후로 선고기일을 잡았다. 당시 부담감은 말도 못했다. 합격을 하면 무죄판결이 나겠지만 떨어질 경우 큰 죄를 지을 것 같다는 부담이 됐다. 변호사도 없는 상태에서 최후 변론 시 재판관에게 고시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고시생이 가장 자신에게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면서 설봉장학회의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유가 있다. 이것은 그 사람이 장학회를 빌미 삼아 사채 사업을 하고 고시생들의 인격조차 보장되지 못했다. 이런 사항을 알린 것이 업무방해가 되고 명예훼손이라고 하니, 대한민국의 경찰이나 검찰이 해야 할 일을 못해서 우리가 나섰는데 우리가 처벌을 받는 다면 정의가 상실된 것이다. 우리가 이일을 할 때 MBC에서 취재를 해 뉴스에 내 보냈는데 우리를 처벌하려면 MBC도 같이 처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의 가장 중요한 평등의 원칙이 훼손된 것이라 주장해 다행히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제는 나이가 들다 보니 밖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부족함 등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계기였다.

 

Q 변호사님만의 법률 철학이 있다면?

A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비슷한 생각을 한다. 처음에는 재판이라는 것이 정의를 세우는 것이라 생각했다.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했는데, 실무를 해보니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게 아니라 그러고 싶은데도 꼭 정의를 세우는 것이 가장 주된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 왜냐하면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정의에 합치하는 것인데 증거관계가 애매하기 때문에 재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판사, 검사, 변호사도 잘 모르는 일이다. 오로지 당사자만이 진실을 안다. 그러나 당사자들도 둘 중에 하나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재판을 할 때는 억울한 일이 생길만한 상황적인 여건이다. 나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재판을 하면 힘들고 돈이 들기는 하지만 정의는 세울 수 있다고 많이 생각한다. 사실 그렇지 못하다. 증거관계가 미진하기 때문에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건을 하다 보면 반드시 진실을 밝고 싶은 일들이 있다. 그것은 사건에 대한 확신이 들 때이다. 의뢰인이 정말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와 상식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는데 판사가 상식을 동원해서 인정하는데 크게 무리가 없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재판을 통해서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욕구들이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재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 간의 분쟁을 좀 더 빨리, 서로 앙금이 없이 해결하는 것이 변호사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의를 밝히기 위해서는 1심, 항소심, 대법원 등 비용과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재판이 끝나서 이기더라도, 아니면 지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미움이 크게 자리 잡는 만큼 가급적이면 당사자 간 중재자의 역할이 변호사들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Q 주 업무로 삼고 있는 분야는 어떤 것인지?

A 변호사의 분야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분야는 따로 없다. 다만 아주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분야가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해양 사고, 연예인 사고, 의료 사고, 환경 사고 등 이러한 것들은 분야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엔 변호사들이 많다 보니 사업을 위해서 흔히들 이혼 전문, 교통사고 전문 등은 흔한 사건이고, 정형화돼 있는 사건인 만큼 모든 변호사들이 능히 다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럼에도 전문화시킨다는 것은 소비자로 하여금 그런 사건들이 많으니까 ‘아~이런 전문 변호사구나’ 하는 찾아오게끔 하는 마케팅 전략이지 특별히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저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사건들이 부동산과 관련된 소송들이 많다. 종중 내부 등 토지 관련 소송이 많다 본 부득이하게 부동산 분야의 소송을 많이 하고 있다.

 

Q 그에 따른 의뢰인과 변호사님의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고, 업무에서 얻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시는지?

A 처음에는 상담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법률적인 어려움보다 의뢰인들이 이해를 못해 주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담이 꼭 의뢰인들의 얘기를 듣고 법률적인 얘기만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1차적으로 대한민국 변호사 사무실의 문턱이 높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변호사 사무실까지 들어오기까지는 많은 고민을 하고 망설이다가 오게 된다. 그러면 변호사인 나는 의뢰인이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고 나서 이야기를 들어줄 때 의뢰인의 힘겨움을 알게 된다면 상담은 수월하게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법률적인 것만 본다면 돈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표정부터 모든 것이 힘들어진다. 하지만 의뢰인과 공감이 된다면 의뢰인은 편안해지고 서로 간에 신뢰가 생긴다.

또한, 의뢰인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왔다는 것은 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의뢰인들은 이미 올 때 큰 기대감을 세 가지를 갖고 온다. 기대가 많으면 말 한마디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는 말을 항상 해주고 있다. 의뢰인들은 상담을 하면서 내가 이긴다고 하는 큰 기대, 비용이 가급적 싸고, 분쟁이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크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그 세 가지에 대해 딱 부러지게 얘기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재판이라는 것이 법률은 이미 정해져 있고, 판사나 변호사 입장에서는 사실이 정해져 있지 않다. 진실이 있지만 증거가 없으면 안 되는 그런 과정이 재판이기에 의뢰인이 말하는 모든 것을 증명해 내야만 법률은 의뢰인의 편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의뢰인들은 변호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의뢰인을 솔직하게 대하는 것이 나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친한 친구나 지인들을 만 좋은 얘기도 많이 나누며 생활하고 있다. 특히, 일주일에 한 번씩 통기타 동호회에 참석해 기타 연주와 함께 드럼을 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Q 후배 법조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는 ‘정직’이다. 내가 정직하면 내 마음이 편할 뿐 아니라 남들에게도 떳떳할 수 있다. 정직한 사람은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여유 있게 웃으면서 기다릴 수 있다. 변호사에겐 ‘성실’과 ‘겸손’이 최고의 덕목이다. 의뢰인에게 성실하고 겸손하게 대하면, 설사 재판 결과가 다소 불만족스러워도 서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변호사로서 자긍심을 갖고, 일에 있어서는 성실하게, 사람을 대할 때는 겸손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Q 지역민들에게 한 말씀해 준다면?

A ‘법을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다.’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법률문제를 피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피하려고만 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법률문제가 발생하면 주저하지 말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으면 어려워 말고 변호사를 찾거나 방문해주길 바란다. 앞으로도 지역의 법률문화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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