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함께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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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함께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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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2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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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청명한 날씨, 앞으로 옆으로 지나가는 산야가 짙푸름을 자랑하는 그 곳을 뚫고 곧게 뻗은 고속도로.

처음 가보는 경춘고속도로의 주변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옆의 친구와 담소하며 마이크를 잡은 지휘부의 안내와 설명을 듣다 보니 벌써 동홍천, 어디서 갈라져 어느 틈에 이곳까지 왔는지 어리둥절하다. 9시에 잠실 종합운동장을 출발하여 3시간도 안되어 설악산에 도착하였으니 도로망은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겠다.

점심 준비가 덜 되어 부근의 ‘속초시립박물관’을 둘러보는데, 발해역사를 주로 전시하여 역사공부 복습을 한 셈 친다.

점심식사는 통 멧돼지 바비큐, 식대는 장송순회장이 부담하였는데 고기가 엄청 남아 저녁 안주거리로 싸들고 왔다.

1965년 2월 20일 우리는 육군본부 연병장에서 예비역 육군소위로 임관하였다. 4월 23일 각 병과별로 군사학교에 입교하여 군복무를 시작하였는데, 예편 후 ‘고대ROTC 3기동기회’가 결성되고 모임을 가져 오늘에 이른다. 올해는 임관 50주년이라고 중앙회에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가졌고, 우리는 행사비 분담금 1000만 원을 내고도 이것저것 합쳐 1000만 원이 남아 그 돈으로 공짜 여행을 하기로 계획하였다.

40여 명이 가겠다고 신청을 하고는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지고 강갑병, 강태승, 고수부, 김광용, 나길배, 류평무, 박영순, 박인우, 성영일, 송년섭, 우교훈, 윤정로, 이경순, 이안무, 이영우, 이우근, 장송순, 전제만, 정방신, 조흥래, 진영호, 채준석, 황인강 등 스물세명이 어깨를 겨루었다. 전제만은 졸업 후 처음 나온 터여서 모두들 반가워했다. 자주 만나던 사이고 동류의식이 남달리 강한 출신들이라 잠시 쉴 틈도 없이 깨가 쏟아진다.

몇 번 타보려고 벼르던 권금성 케이블카에 오른다. 내려다보이는 설악동이며 멀리 보이는 산줄기들이 낯익은 나그네를 반기는데, 어떠한 미사여구를 갖다 대어도 자연의 위대함을 이야기로 표현할 수 없겠다. 설악산은 언제, 어디서 보아도 어떠한 명산에 견줄 만큼 웅장하고 섬세하고 아름답다.

길을 바꾸어 화진포로 향한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여름인파 대신 맑은 하늘 선선한 바람이 반긴다. 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을 둘러보고 이승만 별장을 들어서니 열 평도 안 되는 1층 건물에 주방, 화장실도 없는데, 그나마 지역사령관이던 어느 장군이 보수를 하고 유족이 유품을 갖다놓아 구미를 맞추려 하였다지만 우리의 눈에는 별장이라고 이름 붙이기가 아깝다.

낮에 먹은 식사가 아직도 인데 벌써 저녁이다. 공현진 포구에 자리한 식당에서 자연산 회로 또 배를 불리게 되었는데, 후배가 운영하는 양조장에서 특별 제조한 산양산삼 막걸리를 이안무가 넉넉히 가져와 막걸리대학의 티를 냈다.

금강산콘도에서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지하 해수사우나로 몸을 푸니 또 즐거운 일정이 기다린다. 어제저녁 식사한 횟집에서 남은 막걸리와 매운탕으로 해장을 하는데, 어제 오늘 백만 원이 넘는 식대는 이안무가 냈다고.

강릉경포대로 이동하여 오죽헌과 선교장을 견학한다. 오죽헌이야 널리 알려지고 여러 번 와 본대로 오죽헌이다. 1963년 보물 165호로 지정된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팔각지붕이다. 넓게 잘 가꾸어진 뜰과 집들이 부잣집이었음을 웅변한다. 대한민국 최고액 지폐, 5만 원짜리와 5000원짜리 지폐에 얼굴이 들어 있는 사임당 신씨와 율곡 이이 모자분이 태어난 곳이다. 성품 좋은 어머니, 화가, 서예가. 부덕을 갖춘 어머니. 조선중기의 유학자, 정치가, 이정도의 업적이 네 가지뿐인 우리나라 화폐의 두 가지를 차지 할 정도인지, 더구나 최 고액권에... 세종대왕은 만 원짜리에 박아 놓아도 되는지, 내 속이 좁아 트집을 잡는 것인가. 부잣집 딸을 어머니로, 외갓집을 잘 두어 율곡은 공부도 잘 했나보다. 하지만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훑어보면 이 정도 인물은 부지기수다.

선교장은 국가지정 중요 민속문화재 제5호인데, 효령대군의 11대 손인 가선대부 무경(茂卿)이내번이 지어 10대째 살면서 가꾸어 왔다고 한다. 예전에는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고 하여 선교장이라고 이름하였다는데, 호수는 논을 만들어 부지의 넓이나 건물의 규모, 배치가 만석꾼 집답다. 집주인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등 지역사회에 이바지 했다고 해설사가 설명한다.

동해안은 바쁘다. 볼거리, 먹을거리도 많다. 잔잔한 동해바다에 떠있는 어선들이 한가롭게 보인다. 그러나 바다 위에는 어부들의, 바다 속에는 물고기들의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진다.

늦은 점심과 이른 저녁을 겸하기로 한 계획에 따라 횟집에서 끝마무리 성찬을 즐기며 50년 지기의 우정을 다진다. 이 식대는 박영순이 내었는데, 즐거운 여행의 기억들이 영원할 것이다. 준비와 진행에 인상한번 못쓰며 바빴던 김광용 총무의 노력이 돋보인다.

귀로의 차 안은 여전히 시끌벅적하고 내년에도 이러한 행사를 준비하겠다는 장송순회장의 다짐에 박수가 쏟아진다. 고맙다. 수고했다.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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